페일린 선방했지만 바이든이 이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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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미국 국민과 언론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던 공화당 부통령 후보 페일린(44·알래스카 주지사)과 민주당 부통령 후보 바이든(65·상원 외교위원장)의 토론회에 대한 평가는 이렇게 나오고 있다. 두 사람은 2일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의 워싱턴 대학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토론을 했다. 둘은 이라크전을 비롯한 주요 현안을 둘러싸고 90분 동안 팽팽한 공방전을 벌였다.

토론 직후 발표된 여론조사에선 바이든이 판정승을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CNN방송 조사에서 ‘바이든이 이겼다’는 응답(51%)이 ‘페일린이 이겼다’는 쪽(39%)보다 많았다.


하지만 ‘페일린이 기대보다 잘했다’고 평가한 응답자는 84%나 됐다. 페일린에 대한 유권자의 기대치가 낮은 상태에서 토론이 이뤄진 데다 페일린이 큰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같은 조사에서 ‘바이든이 기대보다 잘했다’는 응답은 64%였다.

CBS방송 조사에서도 ‘바이든이 이겼다’가 많았다(46%). 이어 ‘무승부’(33%), ‘페일린 승리’(21%) 순으로 나왔다. 조사에서 부동층의 66%는 ‘페일린이 주요 현안에 대해 알고 있다’고 답했다. 토론 전의 43%보다 높아졌다. AP통신은 “페일린이 바이든과 대결하면서 부통령 후보로서의 입지를 다졌다”고 평가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페일린은 정확한 통계를 제시하는 등 이슈에 거침이 없었고, 눈에 띄는 실수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CNN방송은 “이번 토론으로 페일린에 대한 공화당 지지층의 우려는 어느 정도 해소될 것 같다”고 관측했다.

‘언행 실수 기계(gaffe machine)’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바이든은 6선 상원의원의 경력이 헛된 것이 아님을 입증했다. CNN은 “바이든은 절제된 노련미를 보여 줬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페일린과 바이든이 큰 실수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토론회로 대선 분위기가 크게 달라지진 않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PBS방송의 흑인 여성 앵커인 그웬 아이필의 사회로 진행된 토론에서 바이든이 먼저 공세를 취했다. 그는 “(공화당 대통령 후보인) 존 매케인이 ‘미국 경제 기초가 튼튼하다’고 주장하는 등 (현실과) 동떨어진 얘기를 했다”고 비난했다. 이에 페일린은 “그건 미국 노동자들이 강하고 능력 있다는 뜻이었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경제를 살리려면 세금을 깎아야 하는데도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버락 오바마는 94번이나 증세법안에 찬성했다”고 공격했다.

바이든이 “매케인과 페일린은 이라크전을 끝내기 위한 계획을 내놓지 않았지만 오바마는 16개월 이내에 병력을 철수시키겠다고 약속했다”고 하자 페일린은 “그건 백기 투항을 하는 것과 같다”고 맞받아쳤다. 그러고 나선 “북한의 김정일, 이란의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 쿠바의 카스트로 형제와 무조건 만난다는 건 순진한 생각이다. 만나더라도 전제조건이 맞아야 한다”며 오바마에게 포문을 열었다.

페일린은 ‘북한 국방위원장’이란 호칭을 계속 생략한 채 “김정일 치하의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해서는 안 된다”며 “필요하면 경제제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바이든은 “오바마가 꼭 그렇게 말한 건 아니다”며 “우리의 친구와 동맹은 미국에 대해 대화하라고 말한다”고 반박했다.

세인트루이스(미주리)=이상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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