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코리아 펀드’의 교훈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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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호 26면

한 달이 일 년 같던 9월이 지나갔다. 월초 외국인 채권 투자 자금이 빠져나가면서 외환 유동성이 말라붙으리란 ‘9월 위기설’이 기승을 부리더니 추석 무렵부터는 미국의 금융시장이 하루 앞을 알 수 없는 혼돈 속으로 빠져들었다. 투자은행인 리먼브러더스와 메릴린치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세계 최대 보험사인 AIG가 구제금융을 받아 사실상 국영화됐다. 10여 개 미국 지방은행이 문을 닫은 건 별다른 뉴스거리도 되지 못했다. 미국 정부가 급기야 세금 투입이란 최후의 선택을 감행했지만 정치권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진통을 겪고 있다.

시장은 우왕좌왕하고 있다. 뉴욕 증시는 처음 7000억 달러에 이르는 세금 투입이 시장을 살릴 것이란 희망에 부풀었다. 하지만 곧 달러가치 하락과 재정적자 확대 등의 후유증이 부각됐다. 지금은 구제금융안 통과가 지연되면서 이런 한가한 걱정을 할 때가 아니라는 분위기가 시장을 뒤덮고 있다. 발 등의 불을 꺼 줄 한 동이의 물이 다급한 상황이다. 일희일비 속에 지수는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한국 증시는 상황이 좀 낫다. 미국보다 먼저, 또 많이 빠진 탓이겠지만 지난주 1470 선까지 반등하는 데 성공했다. 공매도 제한 등 곰(하락장)의 발목을 묶는 조치가 나왔고, 연기금이 구원투수로 나선 등의 영향일 것이다.

이 같은 안도 랠리나 베어마켓 랠리에도 불구하고 투자자 심리는 잔뜩 위축돼 있다. 9월 들어 지금까지 국내 주식형 펀드는 1조2000억원가량 감소했다. 감소 규모는 국내 주식형과 해외 주식형이 엇비슷하다.

국내 증시의 버팀목이 돼 온 적립식 펀드 계좌도 지난 7월 감소세로 돌아서 17만 개가량 줄었다. 9월 중순까지의 약세장을 지나오며 이 숫자는 좀 더 많아졌을 것이다. 지난주 반등이 마이너스 수익률로 고민해 오던 투자자들에게 환매 찬스로 보일 가능성도 크다. 마침 적립식 투자가 거치식에 비해 수익률이 나을 게 없다는 무용론이 나오고 있다. 주가가 거침없이 오르다 제자리로 돌아오는 요즘 같은 장세에선 거치식의 수익률이 적립식보다 상대적으로 낫다.

여기서 돌이켜볼 게 ‘바이코리아 펀드’다. 1999년 증권 붐을 타고 ‘국민펀드’로 부상했지만 9개월 만에 원금의 77%를 까먹으며 천덕꾸러기가 됐다. 닷컴 버블에 취해 몰려든 사람들은 큰 폭의 손실을 기록하고 앞다퉈 환매했다. 이름은 ‘나폴레옹정통1호주식’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이 펀드의 현재 수익률은 300%에 육박한다. 장기투자를 하다 보면 약세장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갖고 버틴 투자자들은 연 평균 30%의 수익을 낼 수 있었다. 적립식 펀드에 들고 있다면 2년 뒤, 또는 5년 뒤 한국과 세계경제가 어떨지를 한 번쯤 생각해 보고 환매를 결정해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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