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상의 로봇 이야기] 로봇공학은 자연을 흠모한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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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호 35면

몇 년 전 방문한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한국 유학생이 제작한 도마뱀 로봇을 볼 기회가 있었다. 그해 타임지가 선정한 ‘올해 최고의 발명품’ 중 하나로 뽑히기도 했던 이 로봇은 실제 천장을 기어다니는 ‘게코 도마뱀’에서 영감을 얻어 도마뱀 발의 구조를 분석하고 모방해 제작한 것이다. 미끈미끈한 유리창에서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다.

게코 도마뱀은 거의 모든 물체에 들러붙을 수 있다. 발바닥에 있는 수㎛ 크기의 ‘나노헤어’라는 미세한 생체조직이 그 비결이다. 물체 크기가 이 정도 수준으로 작아지면 일반적인 물리학적 현상과는 다른 ‘반데르발스의 힘’이 작용해 엄청난 흡착력이 생겨난다. 도마뱀의 발바닥은 무수한 나노헤어로 덮여 있기 때문에 자기 몸무게의 몇 배를 지탱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된 것이다. 과학자들은 이 원리에 최신 나노공학 기술을 접목해 나노헤어 가공에 성공함으로써 이를 로봇의 발바닥에 장착하기에 이르렀다. 도마뱀 로봇은 건물 잠입에 용이해 향후 스파이 로봇 등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일본 도쿄공대의 유명한 로봇공학자 히로세 교수는 ‘어떻게 뱀은 발이 없는데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라는 단순한 의문이 뱀 로봇을 만드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더 나아가 그는 개·거미 로봇 등을 제작하고 있다. 이런 로봇들은 지뢰 제거나 지진 등 인간이 접근하기 힘든 위험한 현장에서 활약하는 데 매우 탁월한 기능을 갖추고 있다.

이처럼 생물체의 기본구조와 수십억 년의 진화를 거쳐 최적화한 생체시스템을 모방해 실생활에 유용하게 쓰려는 노력들을 ‘자연모사’ 혹은 ‘생체모방기술’이라고 부른다. 로봇 설계자는 기본적으로 동물이나 인간의 기능을 그대로 재현하고자 한다. 과학자들이 로봇을 개발하는 데 쓰는 대부분의 노력이 생체모방기술의 적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에는 인간의 눈과 귀를 모방한 인공 눈, 인공 귀에서 접촉하는 힘과 온도를 느낄 수 있는 인공 피부, 인간 근육을 흉내 낸 인공 근육의 연구 등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다.‘인간이 다른 동물에 비해 더 많이 번식하고 지구를 지배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치타처럼 달리기 실력을 자랑하는 것도 아니며 하늘의 왕자 독수리처럼 탁월한 시력과 날카로운 발톱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인간은 다른 동물에 없는 두 가지의 우월한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 불과 무기를 다룰 수 있는 정교한 두 손과 탁월한 학습 능력이 그것이다. 지능형 로봇의 궁극적인 목표가 인간이 하는 일을 대신해 삶의 질 향상을 도모하는 것이라면, 결국 로봇은 어떻게 해서라도 인간이 가진 이 두 가지의 차별적인 능력을 적극적으로 모방해야 한다.

하지만 이 두 가지 능력은 너무도 오묘하다. 그래서 메커니즘을 아직 완벽하게 규명해 내지 못하고 있다. 아이들이 언어를 습득해가는 체계라든지, 서툰 손놀림에서 시작해 능숙하게 피아노 건반을 다룰 수 있게 되는 과정 등을 인류는 잘 모른다. 끝내 규명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로봇은 끊임없이 이런 능력을 따라갈 것이다. 마치 우리 인간이 신을 흠모하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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