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를움직이는사람들>20.동양그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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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동양그룹 현재현(玄在賢)회장의 좌우명은 「병교필패(兵驕必敗)」.손자병법에 나오는 이 말은 『병사가 교만하면 싸움에서 반드시 진다』는 뜻이다.예컨대 경영도 전쟁터와 같아서 기업인이 자만하면 경쟁에서 뒤처진다는 의미다.그룹 성장사나 玄 회장의 그룹경영 과정등을 보면 이 말의 의미를 읽을수 있다.玄회장 스스로도 이 경구를 회장실에 걸어놓고 경계심을 수시로 되새긴다.
그는 올해 47세로 경기고와 서울대법대.미국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고 검사출신의 엘리트다.그는 창업주(故 李洋球선대회장)의 사위로 그룹을 승계해 금융등 새 사업에 과감히 진출해 사세를 키우는 수완을 발휘했다.창업주의 와병으 로 83년 동양시멘트 사장이 된지 13년,그룹회장이 된지 7년밖에 안됐으나 재계 30위권 밖에 있던 동양을 20위권내로 끌어올렸다.이같은 개인사와 기업경영으로 『교만하지 말자』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것이다.
동양은 선대회장의 창업 이래 시멘트.제과의 제조업 중심으로 성장해왔다.그러나 현재 시멘트.제과등 제조업의 비중은 약 절반.나머지 절반은 금융등 타부문이다.
이 변화를 주도한 것이 玄회장이다.玄회장은 80년대초 국내 증권업이 아직 초창기일때 증권에 눈을 돌렸다.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선진금융을 공부한 玄회장은 금융업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인식한 것이다.
그는 84년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증권사를 인수했다.
이 결정을 계기로 그룹의 주력을 금융쪽으로 선회했고 현재까지사세확장은 「성공적」이란 평이다.
금융부문 확장은 계속됐으며 지난 5월엔 중앙투자신탁을 계열사로 편입했다.이로써 동양은 은행을 제외한 전 금융부문의 회사들을 망라하게 됐다.
玄회장의 그룹경영은 미국에서 공부한 경험에 바탕을 두었다.玄회장은 사장단회의에서 쟁점이 생기면 토론을 유도한다.임원들의 얘기가 길어져도 어지간해선 중간에 끊지 않는다고 한다.회의석상에서 못다한 얘기는 별도 자리를 마련한다.
계열사 사장.임원과의 골프모임도 그중 하나다.
동양은 최고경영자등 40대를 비롯한 젊은 대표이사의 비중이 가장 높은 그룹이다.
동양의 경영진 연령분포는 변화와 개혁의 상징처럼 돼있다.
동양그룹 대표이사 중에는 40대가 30% 이상이다.玄회장과 41세의 담철곤(譚哲坤)부회장 말고도 22명의 대표이사 가운데40대가 7명이다.그 외에 안길룡(安吉龍)동양증권사장은 지난해49세의 나이로 증권업계 최초의 40대 사장으 로 임명됐다.
40대 대표이사는 제조업엔 1명뿐이고 나머지는 금융(4).정보통신(1).유통(1)등 「소프트」산업쪽에 치중돼 있다.
동양그룹은 조직이나 경영기법도 파격적이라 할수 있다.
동양제과는 지난 19일 대대적인 「조직파괴」를 단행했다.부장.임원으로 내려오는 피라미드식 조직을 완전히 뒤바꿨다.본부장제의 수평적 직제로 개편하면서 본부장이 아닌 임원들도 생겨나게 됐다.임원회의는 폐지하는 대신 본부장들의 수평적 회의체를 도입했다. 동양은 지난 15일 창립 39주년을 맞았다.
玄회장은 기념사에서 『2000년까지 전업종을 개방해야하는 소용돌이 속에 새로운 경영패러다임이 절실한 때』라고 강조했다.
그룹 운영은 크게▶시멘트.제과등 제조업▶증권.투금.생명등 금융▶유통.무역▶정보통신의 네분야로 나눠진다.각 계열사는 대표이사들이 경영을 이끌어간다.그러나 계열사의 중요한 의사결정은 玄회장이 관련 계열사 대표와 논의해 내린다.
玄회장은 시멘트.증권.투금.매직.보험등 덩치가 큰 5개 계열사에 대해 한달에 한번 이사회를 주재한다.
이 회의에서 각 계열사의 경영방침이 결정된다.급박한 현안은 회장-사장선에서 내려진다.회장단 회의는 없다.부회장들은 경영을자문한다.
***결정 빠른 .스피드경영' 그만큼 의사결정 속도가 빠르다.玄회장이 강조하는 「스피드경영」의 요체다.예컨대 중앙투자신탁의 인수는 玄회장과 증권.그룹기조실 대표자들이 모인 소모임에서결정됐다고 한다.이같은 의사결정체를 소형 보트에 비유하는 사람도 있다.소형보트 는 쉽게 진행노선을 바꿀수 있다는 것이다.
제조업중 제과사장을 겸임하고 있는 譚그룹부회장은 손윗동서인 玄회장의 그룹경영을 보좌하면서 제과에 대해 거의 전권을 행사하고 있다.일종의 역할분담이다.
창업주의 둘째 사위인 譚부회장은 미국 조지워싱턴대에서 전공한선진마케팅을 기반으로 동양제과의 덩치를 키웠다.
89년 사장 취임초 9백억원 수준의 매출액을 1년만에 1천억원이상으로 늘렸으며 작년엔 3천5백억원을 돌파하는등 연 20~30%의 성장률을 기록했다.스포츠를 좋아해 작년엔 제과 농구단을 창설하기도 했다.
박제윤(朴濟贇)시멘트부회장은 70년대초부터 동양시멘트에 몸담은 골수 시멘트맨.玄회장 취임후 부사장.사장을 맡아 삼척공장을시멘트 단일공장으론 세계 최대규모(1천1백만)로 만드는데 기여했다.북한 나진.선봉지구 시멘트 유통사업을 총괄 한다.
이재복(李栽馥)시멘트사장도 대학졸업후 시멘트에 입사해 잔뼈가굵었다.직원들이 「형님」이라고 부를 정도로 상하관계가 원만하다. 삼척공장 증설사업을 주관할때 일일이 건설공정을 점검하는 꼼꼼함을 보였다.
이영서(李永瑞)동양매직사장은 매직의 공격적 경영을 선도하고 있다.90년 사장 취임후 가전3사에 세탁기 공개평가회를 제안하는 적극성을 보였으며 백색 가전 진출에도 많은 역할을 했다.보험사 출신으로 대우전자 부사장을 지내기도 했다.
홍은기(洪恩基)증권회장은 산업은행을 거쳐 산업리스회장을 역임한 금융통.玄회장 금융경영의 큰 틀을 자문하면서 온화한 성품으로 계열사 사장들을 리드해 나간다.
김병택(金炳탁)중앙투신회장은 대학졸업후 산업은행에 들어가 30년이 넘게 근무한뒤 부총재까지 지냈다.동양투금 사장으로 영입돼 올해 계열사로 편입된 중앙투신회장이 됐다.오랜 금융계 생활을 바탕으로 발이 넓다.
안길룡 증권사장은 대신.대보.한흥증권을 거쳐 동양증권 상무로입사한 증권통.玄회장의 증권진출직후 영업강화를 위해 영입했다.
회사채발행 인수에서 1,2위를 다투는데 기여했다.
조왕하(趙王夏)투금사장은 미국 UCLA 법학박사(국제거래법및증권거래법 전공)로 변호사 출신이다.89년 생명 부사장,종조실장을 거쳐 94년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의 정책자문기구인 21세기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리더겸 참모의 2중역을 소화했다.
***금융개방시대 行步 주목 생명보험의 윤덕우(尹德宇)부회장은 대학졸업후 OB맥주에 입사,3년후 시멘트에 입사했다.동양경제연구소장.베네피트생명사장을 지낸후 올해 생명 부회장에 올랐다. 노영인(盧永仁)생명보험사장은 35세에 시멘트이사에 올라 같은해 상무로 승진한뒤 15년이 넘게 임원을 지냈다.시멘트에서 자재담당.영업.수출등을 거쳤다.94년 부사장으로 보험을 맡았다. 글로벌의 채오병(蔡五秉)사장은 제일모직.삼성물산에서 일했다.94년 동양글로벌사장으로 임명돼 무역부문을 총괄한다.
염휴길(廉烋길)동양SHL대표 부사장은 91년 증권의 뉴욕사무소장으로 입사해 그룹종조실장.시멘트전무를 지냈다.통합전산망 구축과 소프트웨어 개발에 공이 크며 동양의 정보통신사업 진출 실무를 맡고 있다.
박중진(朴重鎭)그룹기획조정실장은 미국 조지워싱턴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하고 증권자금부장.이사를 지낸 재무통.신규투자나 흡수합병(M&A)관련등 玄회장의 의사결정때 조언을 한다, 재계는 玄회장의 발빠른 변신으로 금융쪽을 성공적으로 키워온 동양이 앞으로의 금융개방시대에 어떻게 대비할지,그리고 40대 대표이사의 등용이 한국실정에 맞는 것인지등 동양의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다음은 동부그룹편〉 박영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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