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맘/칼/럼

중앙일보

입력

대치동의 달력은 특별하다. 월,화,수,목,금,금,금만이 존재한다. 토요일과 일요일은 그저 달력에만 존재할 뿐이다. 똑같은 24시간을 살고 있지만,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 공부를 하고 실력을 겨루고 있다. 부지런히 발로 움직여 정보를 얻는다.

교육 일번지에 살면서도 나는 어리숙했던 것 같다. 아이가 고학년이 되어 학원을 보내달라고 조르기에 그때서야 영어학원을 알아봤다. 하지만 유명 학원에 들어가려면 6개월에서 1년을 기다려 입학 테스트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라게 되었다. 입학시험을 치른다고 모두 등록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학원 재수·삼수생이 있다는 것도 그제야 알게 됐다.

우리나라에 언제부터 영어 열풍이 불었을까. 현재의 중2에서 고등학생까지는 빨라야 초등 3
학년부터 영어교육을 시작한 세대다. 영어를 원어민처럼 구사하는 후배 녀석들이 치고 올라와 심리적으로 부담을 느끼는 세대기도 하다. 과도기적 시절을 보내고 있지 않나 싶다.

지금 중3인 큰 딸애를 키울 당시에는 영어발음에 상당히 신경을 쓰는 엄마들이 많았다. ‘저
아이는 외국을 한 번도 갔다 오지 않았는데도 발음이 저렇게 멋진데 왜 우리아이는 엄마세대들이 하는 발음을 할까’ 고민하는 엄마들이 있었다. 나 또한 혹시나 아이들에게 한국적 인토네이션으로 잘못된 영어를 가르치게 될까봐 집에서 영어를 가르치지 않았다. 막연히 우리 아이들은 언젠가 미국에 갈 거라는 생각에 영어에 힘을 쏟지 않은 측면도 있었다.

하지만 영어란 아무리 시간을 쏟아 부어도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학원에 2년 반 정도 보냈을 즈음, 큰아이의 영어 실력 점검 차 Longman의 토플책을 해석 시켜 보았다. 문장 두 줄을 해석하는데 두 시간이 꼬박 걸렸다. 우리 세대가 배운 방식대로 우리 아이를 또다시 가르쳐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에게 기회가 왔다. 연구목적으로 교환교수를 갈 수 있는 시기가 된 것이다. 과감한 결단과 함께 한국의 생활을 무작정 접고 떠나기로 결정했다.

오래 살던 곳을 떠나 아무런 연고도 없는 곳에 이사 가기로 결정하기란 사실 한국인의 정서
로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 식구 모두에게 영어는 절실했다. 아침마다 아파트에서 내려다보이는 영어 유치원 셔틀버스, 세금고지서처럼 날아오는 영어 학원비, 그에 비해 도무지 안개 속인 영어 실력. 아이들은 물론, 어디 가서 영문학을 전공했다고 속시원히 말하기 어려웠던 나에게도 영어로 공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여겨졌다.

처음엔 어느 나라로 갈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 조차도 쉽지가 않았다. 영국·호주·미국·캐나다 네 개 나라를 놓고 정보를 하나 하나 구했다. 당시 어느 나라의 영어가 대세를 이루는 가도 고민을 하게 되었는데, 영국과 미국으로 후보를 좁힌 뒤 결국 대세를 따라 미국을 선택했다. 떠나기 위한 준비 기간도 거의 1년 6개월은 걸렸다. 미국에서의 생활은 그렇게 어렵게 시작되었다.

안수영<독자·39·강남구 삼성동>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