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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테리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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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캐나다 최대의 식품 재벌인 매케인가(家)에 최대 시련이 닥쳤다. 매케인 가문이 운영하는 메이플 리프사가 생산한 쇠고기·칠면조 고기로 만든 샌드위치를 먹고 지난 주말까지 12명이 숨지는 대형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캐나다 보건당국은 문제의 샌드위치를 먹은 뒤 리스테리아 식중독에 걸린 것으로 확인된 사람이 26명이나 있어 사망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사건이 일파만파로 확대되자 미국 언론은 캐나다의 매케인과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 존 매케인은 인척관계가 아니라는 사실까지 강조하고 나섰다.

리스테리아는 요즘 유행어처럼 유비쿼터스(ubiquitous·도처에 있는) 세균이다. 토양·물에서도 발견된다. 식물은 흙이나 퇴비를 통해 이 세균에 오염되고, 풀을 뜯어 먹은 가축에 전파된다. 리스테리아균에 오염된 식품을 먹었더라도 건강한 사람이라면 별 문제가 안 된다. 증상이 없거나 독감 비슷한 증상을 보이다 이내 치유된다. 하지만 노인·환자(당뇨병·암·에이즈 등)·임신부 등 면역력이 떨어진 사람의 경우는 심각하다. 특히 임신한 여성은 건강한 젊은 여성에 비해 리스테리아 식중독에 걸릴 위험이 20배나 높다. 태아를 거부 반응 없이 받아들이기 위해 임신 기간에 스스로 면역력을 낮춘 탓으로 여겨지고 있다. 임신부가 감염되면 태반을 통해 태아도 감염된다. 리스테리아 식중독이 유산·조산·사산으로 이어지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리스테리아 식중독은 절대 가벼이 여길 병이 아니다. 미국 질병통제센터(CDC)의 추산에 따르면 미국에서만 해마다 2500명이 심각한 증상을 경험하고 이 중 500명이 숨진다.

국내에서도 리스테리아가 문제된 적이 몇 차례 있다. 그중 가장 큰 반향을 일으켰던 것은 1997년 드라이어스 아이스크림에서 이 세균이 검출된 사건이다. 이후 드라이어스사는 한국에서 체인점 사업을 포기하고 철수했다.

우리나라에서 리스테리아는 지정 전염병이다. 리스테리아균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리스테리아 식중독 환자는 없다. 한국인이 리스테리아에 특별히 강해서는 아닐 게다. 이 세균의 잠복기(평균 30일)가 보통 식중독균보다 훨씬 길어 진단이 힘들어서다. 또 의대에서 리스테리아를 배웠거나 임상에서 경험한 의사가 거의 없는 탓도 있다.

대형 식품 안전사고는 식품업체에는 재앙이다. 국내 식품업체도 매케인가의 ‘50년 명성’이 하루 아침에 무너진 것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