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1총선후보밀착취재>3.사회단체 명의 합법가장 기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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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설날이 막 지난 지난달 23일 오후 수도권 한 도시 2동 모빌딩 4층의 허름한 창고.그 안에는 1백여개의 쌀부대가 흐트러져 있었다.20㎏짜리 부대였다.「5명 기자 1백시간 밀착취재」를 하던 기자는 창고주인을 알아봤다.「함께 사는 사회」(가명)라는 사회단체였다.
이 단체는 설날을 앞두고 어렵게 생활하는 지역주민들에게 4백부대의 쌀을 배포한 것으로 밝혀졌다.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되지않는 사회단체의 온정으로 보였다.
그런데 그 단체 이사장은 다름아닌 총선에서 이 지역에 출마하는 신한국당 K후보였다.물론 사회단체가 어려운 사람을 지원하는것은 통상 해오던 이웃돕기.
그러나 이 단체는 쌀을 배포하면서 『우리 단체의 후원자가 K씨입니다』라는 말을 건네는 것을 잊지 않았다.
선거법에는 선거일 1백80일 전부터 기부행위가 금지돼 있다.
이 단체의 쌀 배포는 설사 기부행위 금지기간이라 할지라도 가능하다.그러나 K후보는 바로 이 점을 이용했다.자신이 후원자라는사실을 묵시적으로 알림으로써 합법 테두리 안에서 탈법한 것이다. 경기도의 민주당 Q후보.25일 오전5시 잠에서 깨자마자 미국워싱턴에 사는 형에게 전화 거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형이 선거에 보태쓰라고 1만달러를 보내 『고맙다』는 인사를 하기 위해서였다.재산이라고는 서울가양동 25평형 아 파트를 팔아 빚갚고 남은 돈 4천만원뿐.
운동권출신으로 돈 없이 출마한 그로서는 형이 보내준 돈이 여간 큰 돈이 아닐 수 없었다.그가 이런 식으로 모금한 선거자금은 숙부가 도와준 3천달러,고교동창회 모금 1천만원,사회선배들로부터 지원받은 1천만원등 모두 3천여만원.
그런데 Q후보는 모금한 돈을 선관위에 신고하지 않았다.얼마를더 쓸지 모르는데 굳이 신고하면 선거후 회계보고때 무언가 걸려도 걸리게 마련이기 때문이다.불법증여의 정치자금법 위반을 태연스레 한 셈이다.Q후보는 『어디 나만 그런가요.
모든 후보가 다 그럴 겁니다』라고 말한다.
경기도의 자민련 T후보.그는 설연휴인 20일 아무 집에나 들어가 세배공세를 폈다.이날 하루만 18곳을 순례했다.그리고 절을 하면서 『한 표 부탁합니다』라는 말을 빼지 않았다.호별방문금지조항에 위배되지만 T후보는 『까짓것 당선이 급한데…』라며 전혀 꺼릴 것 없다는 표정이었다.
서울강북의 국민회의 Y후보도 불특정 다수에게 금지돼 있는 명함돌리기를 무차별로 하면서 『한번 더 밀어주십시오』라고 호소했다. 이처럼 탈법이 난무하지만 후보들은 『선거법이 까다롭고 말도 안되는 조항이 많아 어쩔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예컨대 지구당사 아크릴간판에 형광등을 넣으면 불법,명함에 과거경력이 들어가면 불법,김밥대신 「오뎅」을 대접해도 불법,대문밖 이면 괜찮지만 대문안으로 들어가면 불법등 온통 「안된다」는 것 투성이라고 아우성이다.
그래서 후보들이 선관위에 일일이 전화를 걸어 위법여부를 질의하느라 선관위 안내전화는 불통이다.T후보는 자신이 서울대 출신임을 알리기 위해 명함에 「서울대 ×회 회장」이라고 새기는 편법을 사용하기도 했다.
특히 현역의원들의 의정보고회를 통한 무차별 선거운동에 원외 위원장들은 불만이 많았다.그래서 Q후보는 비록 적이지만 친하게지내던 이웃 모의원의 의정보고회를 활용,주민들에게 자신을 소개받았다.그러면서 그는 『남이 벌여놓은 잔치판에 무임승차한 것같아 쑥스러웠다』고 고백했다.
정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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