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출근하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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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호 15면

출근길, 나는 매일 고민한다. 차를 몰고 갈까? 지하철로 갈까? 기름값이 이렇게 오르기 전 나는 주로 차를 이용했다. 내 차로 가는 출근길은 ‘즐기는’ 길이어서 좋다.
내 차는 열한 살이나 먹었지만 독일 차답게 실내 디자인, 그러니까 계기판과 조작 스위치들의 디자인이 깔끔하고 전체적인 레이아웃도 탄탄하다. 플라스틱과 가죽도 질 좋은 것이어서 촉감도 좋다. 그래서 탈 때마다 즐겁다.

물론 여기에 라디오와 음악이 없다면 영 허전할 것이다. 출근하면서 나는 두 개의 라디오 프로그램을 듣는다. CBS-FM ‘그대와 여는 아침 김용신입니다’, 그리고 9시부터 시작되는 KBS-1FM ‘송영훈의 가정음악’이다. 가락시장 지나 길이 뚫리면서 시속 100㎞까지 밟을 때 ‘그대와 여는 아침’에서 유리드믹스의 ‘스위트 드림스’라도 나오면 아침부터 얼마나 짜릿한지. 첼리스트 송영훈씨가 DJ를 맡으면서 없어졌지만 유정아 아나운서가 ‘가정음악’을 진행할 때 ‘마티나타-아침의 노래’라는 코너가 있었다.

‘불꽃같이 살다간 우리 시대 여자들’의 이야기가 일주일 동안 매일 10분씩 낭독됐는데 나는 라디오에서 조이의 ‘터치 바이 터치’가 나오길 기다리던 중2 때처럼 그 코너를 매일 기다리고, 기쁘게 들었다.

하지만 대가를 치르지 않는 즐거움은 없다. 차를 갖고 나오는 날 나는 5000원, 혹은 1만원의 주차비를 치러야 한다. 저녁 10시가 되면 주차장에서 차를 빼야 하기 때문에 야근하다 말고 허겁지겁 뛰쳐나와 회사 건물 옆으로 차를 옮겨놓는다. 자정쯤 귀가하려고 나왔는데 차가 안 보일 때도 있다. 견인당한 거다. 그 기분, 다들 잘 아실 거다.

요즘은 기름값 때문에도 그렇고, 그나마 몇 걸음이라도 더 걸으려고 지하철을 탄다. 자가용 출근길이 ‘즐기는’ 길이라면 지하철 출근길은 ‘느끼는’ 길이다. 5호선 개롱역에서 600원 주고 일간신문을 산다. 열차에 자리가 있어도 다리 좀 실해지라고 서서 신문을 읽는다.

예전에는 기사를 꼼꼼히 읽으면서 생각도 좀 했는데 요즘은 마음이 급해져서 그런지 대충대충 훑는다. 하지만 ‘명칼럼’을 읽으면 늘 후련하고 통쾌하다. 그러면서 똑같이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과연 내가 만드는 책에는 이렇게 카타르시스를 주는 콘텐트가 얼마나 있을까? 자문하기도 한다. 이래서 지하철 출근길은 ‘느끼는’ 길이다.

군자역에서 갈아탄 7호선 열차가 뚝섬유원지역을 지날 때는 창 너머 한강 풍경이 펼쳐진다. 그때 나는 속으로 그날의 마음 상태를 한강에 빗대곤 한다. 이런 식이다. ‘오늘은 어쩐지 마음이 분주한 한강’ ‘뭔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아서 더 반짝거리는 한강’….

지하철에서 사람을 구경하는 것도 ‘느끼는’ 일이다. 지하철 인파에 묻힐 때 나도 한 명의 서민임을 자각한다. 하지만 갈수록 서민들을 바라보는 일이 즐겁지 않다. 내 눈도 그렇고, 내 마음도 그렇다. 가능하면 나도 서민에서 벗어나고 싶다. 요즘 학생들은 열차에서 대부분 PMP로 ‘미드’ 따위를 본다. 나는 어느새 PMP 보는 학생보다 책 읽는 학생이 나중에 더 잘될 거라고 믿는 ‘꼰대’가 되었다.

느낌 있는 지하철 출근. 즐거움 있는 자가용 출근. 나는 둘 다 좋다. 그 길에서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니까. 살며 사랑하며 출근하며 말이다.


현직 남성 잡지 기자인 송원석씨는 ‘신사, 좀 노는 오빠, 그냥 남자’를 구분 짓게 하는 ‘매너’의 정체를 파악, 효과적인 정보를 소개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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