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책읽기] 인생 설계 20계명… 첫째, 자기 삶의 주체가 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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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미래를 향한 스무 걸음(20 pasos hacia adelante)
호르헤 부카이 지음
RBA-Integral 출판사, 2007년
144쪽, 15유로

호르헤 부카이는 스페인어권 출판계를 자주 찾는 이에게는 낯익은 정신과 의사 이름이다. 지난 90년대부터 비소설 분야 베스트셀러 목록에 단골로 등장해왔다. 그는 주로 옛날이야기를 현대적 감각으로 풀어내는데 남다른 재주가 있다. 국내에도 『어른이 되어 다시 듣는 이야기』(명진출판)와 남녀 커플의 만남을 소설 형식으로 담아낸 『사랑은 어떻게 시작되는가』(예담출판)가 나와 있다. 그를 찾는 독자(그리고 환자)는 우울증, 경제문제, 가정불화, 사랑에 대한 저주, 부모와 자식 간의 소통 부재, 목표에 도달하지 못해 좌절감에 빠진, 어쩌면 대부분이 정신적인 위기를 겪고 있는 현대인이다.

부카이는 우리에게 자기 자신이 삶의 주체가 되라고 강조한다. “당신이 마음속에 생각하는 것은 당신의 책임이다. 나는 세상이 경쟁하는 곳이 아니라 함께 하는 곳으로 믿고 있으며, 그러기에 함께 하기 위한 필요조건은 누구나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의 심리치료 요법은 논리적 해설이나 정신분석적 접근이 아닌, 적절한 고전이나 우화 등에서 발췌한 이야기를 재구성하거나 변형하여 들려주는 방식을 취한다. 이런 접근은 그의 여유로운 유머와 탁월한 문학적 상상력이 있기에 가능했다. 덕분에 일반 대중들도 책을 통해 그를 만날 수 있게 된 셈이다.

이 책은 20개의 소제목으로 나뉘어 있다. 이를 열거하면 자유를 결정하라. 사랑을 향해 자신을 열어라. 웃음이 넘치도록 하라. 듣는 능력을 키워라. 겸손하게 배우는 것을 배우라. 예의를 지켜라.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을 정리하라 등이다. 그리고 이러한 십계명 같은 주제는 비슷한 실용서에서 볼 수 있는 유기적이고 독립적인 형태로 구성된다.

이 책이 기존의 저작과 비슷하면서도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새로운 테제인 ‘자기실현’을 위해 언급한 주제들을 늘 생각하며 자기 것으로 체화시키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1장 ‘너 자신을 알기 위해 일하라’에서 그는 20년 동안 심리치료에 종사한 자신의 직업을 예로 들었다. 그는 막상 57세 생일에 돌아보니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조차 깨닫지 못했다며 남을 위해 일하려면 자신을 돌아봐야 할 줄 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편 이 책은 마케팅 면에서도 눈에 띈다. 출판사는 종이책 외에도 날마다 반복하는 20개의 가르침(혹은 지침)은 물론이고, 늘 휴대할 수 있는 20장의 그림엽서와 20편의 지혜로운 이야기를 저자의 음성으로 녹음한 CD까지 판매한다. 이른바 독자를 위한 배려의 명목으로 독자의 시선을 끌어들이고 있다.

부카이 의 치료요법의 속성은 ‘당신이 성공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짓궂은 질문을 재치 있게 받아넘기는 여유와 번득이는 유머에서 엿볼 수 있다. “수피 족들은 누가 아프면 의사를 찾는 게 아니라, 똑같은 병에 걸렸다가 나은 사람에게 묻습니다. (···) 그러니 그 대답은 나를 이렇게 (성공하게) 만든 사람들에게 물어보시지요.”

저자는 지난해에 『후보자 (El candidato)』를 발표하며 본격 소설가로 데뷔했으며, 최근에는 인간의 영원한 삶의 주제인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 누구와 함께 할 것인가’를 분석적으로 고찰한 『세 개의 질문 (Las 3 preguntas)』을 내놓았다.

호르헤 부카이(Jorge Bucay·59)

아르헨티나 출신의 정신과 의사다. 오늘날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심리 치료사 중 한 명이다. 『클라우디아에게 보내는 편지』 등 많은 스테디셀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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