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지배구조변혁의물결>1.논의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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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이제 대기업「경영감독자」로서 정부가 물러나고 그 자리를 민간과 시장(市場)이 차지하는 시대가 도래한다.21세기에 기업과 국가의 경쟁력을 결정짓는다는 「기업지배구조」논의.우리의 「오너」단독경영체제에 발빠른 자기변혁을 예고하고 있다.
국경없는 무한경쟁시대에 대비,효율성과 투명성으로 무장해야 할우리 기업의 신경영체제를 모색해 본다.
정부의 「기업 다루기」방식이 바뀐다.사업인허가.대출규제 등 정부가 직접 힘을 쓰는 종래의 방식에서 민간이 상호견제를 통해「맑고 효율적인 경영」을 이끌어내게 하는 방식으로 바뀔 전망이다.소위 정부의 기업지배시대가 가고 민간의 기업 지배시대가 도래하게 되는 것이다.그동안 기업,그중에서도 대기업의 경영통제는정부의 몫이었다.정부의 기업통제라는 「채찍」은 고도성장기에 집중된 정부지원의 「당근」에 대한 반대급부였다.
그러나 기업간의 경쟁과 협업이 국제적 단위에서 일어나고,자본시장 개방으로 기업의 이합집산이 세계차원으로 확산되는 최근의 추세는 정부로서도 무시할 수 없는 여건이 됐다.정부의 직접통제가 시장에 의한 자율통제로 바뀔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규제를완화하는 것은 좋으나 문제는 대기업을 누가 다스리느냐 하는 것.대기업이 기업 밖에서 저지르는 불공정한 상관행은 더욱 엄격한공정거래제도로 다스린다 해도 기업 내부에서 계속되는 「오너」 한사람에 의한 독단적 경영과 비효 율은 누가 또 어떻게 통제하느냐는 문제,소위 「기업지배」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이 논의를공식화한 것은 세계화추진위원회가 작년 6월 내놓은 「기업지배구조 개선방안」.세추위 주장의 핵심은 오너체제의 폐해를 해소하기위해서는 「외부경영 감시」제도가 도입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그래서 사외이사.사외감사제를 도입하고 경영권 보호조치를 철폐해야한다고 제안했다.아무리 세추위가 『소유.경영분리나 재벌해체론이아니다』고 해도 오너들 입장에서 보면 마치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라 는 소리처럼 들리는 주장이었다.재계가 반박 주장을 마련하는데 걸린 시간은 3개월.한국경제연구원을 통해 제출된 재계의 의견은 한마디로 경영체제의 선택은 어디까지나 개별기업과 시장이알아서 판단할 문제라는 것이다.실효성이 없다며 사외이 사제를 거부하면서,경영감시는 강제적 제도화 방식보다 「시장에 의한 경영감시」가 더 효율적이고 따라서 기업인수시장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계의 거센 반발로 잠시 주춤하던 기업지배 논의는 작년 11월 비자금 사건으로 다시 한번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재벌경영을 맑게 하기 위해서는 사외이사제가 도입돼야 한다는 주장이 날개를 달게 된 것이다.현대그룹이 사외이사제를 도 입하기에 이르렀다. ***[ 25면『기업지배…』서 계속 ] 기업지배 논의는 결국 최적 경영감시체제의 선택문제다.
즉 기업인수.합병 등 자본시장에 의한 (미국식)경영규율,이사회라는 내부조직에 의한(독일식)규율,그리고 금융기관.관계사에 의한 (일본식)경영감독,세가지 경영감시체제중 어느 것이 우리 기업경영을 효율화하는데 가장 적합한가의 선택문제다 .그리고 그체제를 법제화할 것이냐 아니면 기업의 자율적인 도입결정에 맡겨둘 것이냐의 문제다.
아직도 재계는 공동입장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그리고 겉으로는논의가 일단락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기업지배에 대한 논의는 날이 갈수록 그 무게를 더해가고 있다.관련 학계와 정부출연연구기관이 연구에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고,세추위는 세추위대로 구체안을 다듬으며 적절한 발표시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눈치다.
그리고 이러한 움직임을 감지한 재계는 「불의의 사태」에 대비,대응논리 개발에 부심하고 있는 실정이다.

<김정수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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