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강남 부동산은 “중개업소만 팝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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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권모(38)씨는 이달 초 상가 권리금도 포기한 채 폐업신고를 했다. 그는 서울 잠원동 한신18차아파트 인근에서 2년 전 중개업소를 열었다. 권리금 5000만원이 아까웠지만 다달이 나가는 관리비와 임대료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권씨는 “시장이 살아날 가능성이 있다면 버텨 보겠지만…”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서울 강남권(강남·서초·송파구) 일대 부동산 중개업소들이 일손을 놓고 있다. 경영난을 견디다 못해 문을 닫은 중개업소도 적지 않다. 아파트 거래시장이 꽁꽁 얼어붙으면서다. 2~3년 전만 해도 목 좋은 점포를 잡으려면 거액의 권리금을 줘야 했으나 지금은 권리금 없는 중개업소도 매물로 나온다.

◇“유사 이래 최대 불황”=강남권 아파트 내 상가에서는 점포를 임대한다는 플래카드가 붙여진 채 불 꺼진 중개업소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강남구 삼성동 삼성타운공인 관계자는 “전·월세만 거래가 조금 있을 뿐 매매는 한 달에 한 건도 채 이뤄지지 않는다”며 “유사 이래(?) 최대 불황을 겪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집들이를 앞두고 한참 분주해야 할 신규 입주 아파트 단지 인근 중개업소도 별반 다르지 않다. 송파구 잠실동 삼성공인 이문형 사장은 “다음 달부터 3개월간 입주 물량이 쏟아지는 잠실 재건축단지(1만8105가구)를 노리고 몰려든 중개업소가 많다”며 “손님이 없어 개점 휴업 상태인 업소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경기 침체에다 각종 부동산 규제로 강남권 일대 아파트 매매 거래가 뚝 끊겼다. 담보대출 규제로 매수세가 크게 위축된 데다 양도소득세 부담 때문에 매물이 나오지 않아서다. 서초구 방배동 S공인 관계자는 “매매계약서를 언제 썼는지 기억도 안 난다”며 “간간이 이뤄지는 전세 계약으로 겨우 사무실 임대료를 내며 꾸려가고 있다”고 말했다. 강남권 아파트 거래는 올 들어 4월까지 6834가구로 지난해 같은 기간(7899가구)보다 15%가량 줄었다.

◇문 닫는 업소 늘어=비싼 월세를 내지 못해 보증금만 까먹고 폐업을 하거나 다른 곳으로 떠나는 중개업소도 늘고 있다. 은마아파트와 청실아파트 인근에는 100여 개의 중개업소 중 10~15곳이 매물로 나와 있다. 은마아파트 단지 내 35개 중개업소 중 5~6개 점포가 새 주인을 찾고 있다.

권리금도 하락세다. 2~3년 전 1억~2억원이던 대치동 일대 중개업소 권리금은 5000만~7000만원으로 떨어졌다. 단지에서 영업 중인 한 중개업소 대표는 “보증금 5000만원에 월 임대료만 250만원”이라며 “어쩌다 있는 전·월세 계약으론 운영비를 맞출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아예 문을 닫는 중개업소도 늘고 있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에 따르면 올 1~4월까지 강남구에서 신규 등록한 중개업소는 243곳이다. 반면 같은 기간 문을 닫은 중개업소는 258곳이었다. 새로 생긴 업소보다 사라진 업소가 15곳 많았다. 폐업도 지난해(246건)보다 12건(5%)이 늘었다. 유엔알컨설팅 박상언 대표는 “아파트 거래가 살아나지 않는 한 중개업소의 휴·폐업이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철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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