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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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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역사학자 필립 아리에스에 따르면 ‘아동’이라는 개념은 17세기 이후 생겨났다(『아동의 탄생』). 중세까지 아동은 축소된 성인에 지나지 않았다. 젖을 떼자마자 어른과 함께 생활하며 일했다. 아이들만 따로 학교에서 오래 교육받는 일도 없었다. 특별히 보호받아야 하는 소중한 존재라는 개념도 없었다. 영아 살해가 빈번했고 심지어 루소조차 자신의 다섯 아이를 죄다 고아원에 맡겼다.

아리에스에 따르면 아동의 탄생은 곧 근대적 가족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18세기 귀족과 상층 부르주아를 중심으로 사랑하는 남편과 아내, 귀여운 아이들로 이루어진 근대적·가부장적 가족이 등장했다. “근대의 승자는 개인이 아니라 가족”이라는 결론이다. 그는 또, 오늘날 심리학·교육학 등이 당연시하는 유아, 아동, 청소년, 성년, 노년기로 이어지는 생애 주기가 역사적 구성물이라는 것도 일깨웠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10대 청소년이 부쩍 주목받고 있다. 촛불을 들고 거리로 쏟아져 나온 10대들이다. 문자메시지로 연락을 주고받고 광우병 쇠고기 때문에 사랑하는 ‘오빠들(스타)’이 아플까봐 염려하며 ‘독재 타도’를 외친다. 갑작스레 정치행위의 주체로 변신한 이들 앞에서 우리 사회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지금껏 기성 사회가 가져온, 고정된 생애 구획을 뛰어넘는 새로운 10대이기 때문이다.

사실 10대들은 이미 우리 사회에서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공고한 세력이다. 특히 1990년대 이후 비약적으로 성장한 대중문화 시장에서는 일찌감치 성인들을 주변부로 몰아냈다. 대중음악의 경우, 주 소비자가 10대인 것은 물론이고 생산자 역시 대부분 10대다. 동방신기, 원더걸스 같은 10대 스타들에게 성인 팬들이 열광하는 형편이다. 하이틴 아닌 로틴을 겨냥한 영화까지 기획됐다. 패션과 트렌드에서 10대가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 것이다.

이제는 이런 10대가 정치 영역에서 하나의 주체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선거권이 없으니 촛불을 들고서다. 물론 이들의 정치는 기성세대의 그것과는 다르다. 스타의 건강이나 학교 급식을 염려하는 ‘생활 정치’다. “시대적 불이익보다는 자기에게 닥친 불이익을 참지 못하는”(한홍구), 개인적 이익에 민감한 정치다. 인터넷이 있어 가능한 ‘웹 2.0 정치’, 이슈보다 이미지가 앞서는 ‘감성 정치’, 정치 시위조차 놀이처럼 즐기는 ‘문화 정치’다. 더 이상 진보·보수 잣대로는 재단되지 않는 ‘탈이념 정치’다.

과연 이들 10대의 정치가 100% 희망인가, 아닌가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중요한 것은 이미 10대들은 정치적 주체로 진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리에스가 간파한 것처럼 생애 주기가 역사적 구성물이듯, 각 세대의 역할과 특성도 시대에 따라 빠르게 변화하는 것으로 보인다.

양성희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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