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노명 외무.日대사 만나던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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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0일 오후5시30분.외무부 장관실.냉랭한 분위기가 방안을 가득 채우고 있다.
애써 웃음을 머금기는 했지만 누가 보더라도 불쾌감이 가득한 공노명(孔魯明)외무장관의 표정이 위기국면으로 치닫고 있는 한-일관계의 현주소를 실감케 한다.
곤혹스럽기는 孔장관을 예방한 야마시타 신타로(山下新太郎)주한일본대사도 마찬가지.표정이 몹시 굳어 있다.전날은 孔장관에 불려 왔고,이날은 야마시타 대사가 스스로 왔다.
고노 요헤이(河野洋平)일외상이 11일 방한,『일본이 한국식민지시대에 좋은 일도 했다』는 에토 다카미(江藤隆美)총무청장관의망언에 대한 일정부의 조치를 설명했으면 한다는 일정부입장을 전달키 위해 孔장관을 방문한 것이다.
그러나 고노외상의 방한은 무산됐다.孔장관이 거부한 것이다.
일정부가 에토장관 망언에 「엄중주의」를 줬다지만 그 정도 조치로는 안되겠다는 것이 孔장관의 설명이었다.해임하라는 것이다.
그것만이 현재의 냉각된 양국관계를 풀고,다음주로 예정된 오사카(大阪) 한-일정상회담을 무산시키지 않는 길이라는 뜻이었다.
한-일관계의 냉랭한 분위기는 외무부내 일본 전담부서인 동북아1과에서도 똑같이 느껴졌다.
이날 오후 고노외상의 방한 결정 소식이 외신을 타고 처음 전해지자 한 직원이 대뜸 말했다.
『온다는 걸 막을 수야 없지 않겠어요.그러나 와서 뭘 하겠다는거지요.그냥 와서 될 일이라면 모를까….』 비자 없이도 잠깐은 다녀갈 수 있으니까 고노외상이 오겠다면 막을 수야 없는 일이지만 맨손으로 그냥 와서 뭘 어쩌겠느냐는 얘기다.잇따라 터지고 있는 일본정치인들의 습관성 망언 파문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는 동북아 1과 직원들의 한숨 뒤에는 일본에 대한 분노가 숨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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