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反日에서 克日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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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언젠가 유럽을 방문했을 때 현지의 가이드로부터 들은 얘기다.
일본 관광객은 다른 나라 관광객들과는 행동거지가 다르다는 것이었다. 70년대에 일본인의 유럽관광이 「폭발」했을 때부터 그들은 사진을 찍는 대상이 다르고 수첩에 메모하는 습관이 있다는것이다. 한국인등 다른 관광객은 가령 에펠탑을 배경으로 자신의얼굴을 넣는 「증명사진」찍기에 바쁘지만 일본인은 그렇지않다는 얘기다. 일본인은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에 가더라도 자신의 직업과 관련된 점포를 찾아 상품 진열방식이나 디자인,품질등을 이모저모 뜯어보고 진열모습을 사진으로 찍는다고 했다.
의류판매업자.문방구점 주인.레스토랑 주인등이 각각 카메라와 수첩을 들고 유럽 각국의 동업자들이 가진 경쟁력을 「취재」해가는 것이다.
이 말에 약간의 과장이 있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일본인은 맹목적인 해외관광을 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일본은 이를 체계화하기 위해 문방구협회등 중소기업 업종별로 해외관광단을 모집,이처럼 취재여행을 한 뒤 각국의 관련업종 정보와 사진등을 협회에서 취합해 기록으로 관리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일본과 일본 산업이 지닌 무서운 경쟁력의 한 원천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광복 50주년을 맞아 곳곳에서 반일(反日)의 목소리가 높다.
국내에서도 옛 일제(日帝)총독부 건물 첨탑철거 작업등 행사가 많았다.일본인 다수가 한국등에 대한 야만적인 침탈을 반성하지않고 있어 이같은 목청을 더 높여야하는 것은 옳다.
그러나 한국이 앞으로 50년을 세계무대에서 확실히 발돋움하는기간으로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감정적 반일에 그쳐서는 안된다.일본을 따라잡고 이겨내는 생산적 극일(克日)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번 여름 휴가기간(7,8월)중 우리나라의 해외여행객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정도 늘어난 90여만명이나 되는등 나라밖 나들이가 최근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국민의식의 세계화를 위해 일단 바람직한 일이다.
그렇지만 이왕 나가는 김에 수첩을 들고,보고 들은 바를 기록하는 자세가 요청된다.
그리고 분야별로,혹은 가족단위로라도 견문록을 만들어 「정보화」해보자.이런 자세전환이 극일로 가는 하나의 길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일본은 뭔가 있다」는 사실을 광복 50주년을 지내면서 잊지말자.
〈金 日 사회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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