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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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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미.소 공동위원회의 향후 업무와 문제 제기를 위한 명령을 중앙으로부터 수령,공위와의 협의를 신청한 정당.단체의 수를 제한하지 않은 실수를 방치한 점(47년7월7일).
▲레베데프(蘇軍 정치사령관)가 작성한 소련대표단의 보고서 초안을 읽음.마음에 들지 않음.다시 작성할 필요.공격할 필요는 없으나 방어는 해야 함.소련대표단의 최종보고서 구상,준비-레베데프. ①한국인들 스스로 정부수립의 문제를 놓고 토론의 장에 나설 수 있도록.
②한국 전지역에 정부가 정권을 이양받는 순서를 지시.
③모스크바 결정 3항의 수행방법 연구.
④빠른 시일내에 한국으로부터 미국.소련군대의 완전한 철수(7월23일).
▲미.소공위 분과위원회 업무시작의 긍정적인 면-한국사회에 긍정적인 분위기를 심어준 것.소련대표단이 더 오래 남아 있음으로써 우리 친구들의 입장을 강화시킨 것.소련대표단이 정부수립을 위해 실질적으로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
부정적인 면-협의에 참여해야만 하는 정당과 관련된 근본적인 문제들을 해결하지도 않은 채 우리는 향후 계획을 미국인들 앞에서 말하고 있다.우리는 이같은 작업에 대한 준비가 없다.제2,3분과위에서도 숙고된 계획이 없기 때문이다.
나의 제안-한국인들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은 큰 약점이 있다.이승만(李承晩)과 김구(金九)는(위원회와의 협의)작업에 참여를 요구할 것이다.우익 정당과 단체에 더 많은 수의 노련한 지도자들이 있다(7월30일).
▲공동위원회 업무 중단이 우리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이유는?①24개 정당 때문에 위원회 업무를 결렬시키는 것은 인기를 잃는 것이다.왜냐하면 작년에 이 문제 때문에 업무가 중단됐기 때문이다. ②공위의 결렬,이는 우리의 우방진영에 대한 타격이다.
아마도 그들은 실망할 것이다.그들에 대한 테러가 거세질 것이며그들을 약화시킬 것이다.왜냐하면 그들은 우리가 작업을 하고 있는 동안 아주 커지고 강화됐기 때문이다.
③반동세력은 그들의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공위가 결렬될 경우그 상황을 이용할 것이다-몇가지 개혁이 시행될 것이라는 점을 예상할 수 있다.토지개혁.여성평등에 관한 개혁.무역문제와 국민의 물질적 복지 향상.
④미국은 자신의 입장을 견고히 할 수 있을 것이다-무역문제.
산업문제.한국을 위한 차관문제.아래서부터 위까지 모든 요직에 자기 사람을 박아놓는 것(8월2일).
▲위원회의 우리측 단원들과 향후 진행문제에 관한 회의 제안.
①8월5일 위원회 소집때 전과 같은 문제 제기,우리측 제안 제시. ②반탁위원회에 속하고 성명에 서명한 정당.단체 대표들을위원회 회의로 소환.
③모스크바의 답변을 기다리지 말고 분과위원회 업무 시작에 관한 우리측 제안 제시.
둔킨(제1분과위 소련측위원)이 나의 제안 2,3항에 반대했다(8월3일).
▲레베데프에게 지시.위원회 업무 진행에 관해 김.박(김일성과박헌영을 지칭하는 듯함-편집자註)과 협의하고 그들의 의견 청취.남한 동정.국민정서.미국의 의도,정당.단체 수 등을 갖고 미국이 부리는 잔재주 등에 관한 통보(8월4일).
▲선거에 관한 문제.긍정적으로.보통.평등.비밀의 원칙하에 치러진 선거를 통해 임시회의 구성.
부정적 측면과 난제-북한지역내 미군이 주둔하는 경우 반동세력의 준동가능성.남한의 우익진영으로부터 북한에 파견의 허용을 요청해 올 가능성.미국및 남한의 우익진영이 선거인단을 통한 다단계 선거실시를 요구할 가능성(8월6일).
▲우리측 계획 ①47년8월5일자 우리측 제안에 따라 2,3분과위 활동 즉각 개시.
②우리측 제안중 조항2의 실행.
③정부수립.
④결의안 12와 조항 7에 따라 협의기구 창설.
⑤정당및 사회단체 대표로 구성되는 임시인민회의 설치.
⑥한국에서의 선거는 반드시 보통.평등.직접.비밀의 원칙하에 실시,정부주도와 신탁통치위원회의 감독.
두번째 제안 ①제2분과위에 선거법안 제출을 위임.
②남북한에서 헌법제정회의 구성을 위한 선거 실시.선거에는 남북한의 모든 주민 참여.선거구를 기초로 행정구역 조직.구역마다선거위원회 설치.
③헌법제정회의는 공동위원회의 협력,법률안 마련및 의회 선거의준비작업을 떠맡을 임시정부 구성을 위해 조직된다.
두번째 제안에 대해 레베데프는 신경질과 당혹감이 곁들인 불만을 나타내기 시작했다.그는 자신이 이 일에 대해 책임지는 것을원치 않았다(8월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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