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렬 선생 영전에 선비정신·학구열 남기시고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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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초봄에 때 아닌 함박눈이 내리더니 중천(中天) 선생이 떠나셨다.

선생이 안 계신 세상의 아침을 맞는 것이 이처럼 허망하게 느껴질 줄은 몰랐다. 30여 년간 같은 학문의 길을 걸어 온 분이었는데, 이젠 이 세상 분이 아니시란다. 지난 달 옛 동료교수들과 함께 만났을 때만 해도 맥주로는 성이 안 찬다며 혼자서 소주를 찾으셨을 만큼 건강하던 분이셨다.

‘중국철학사’는 제1권만 써놓고 10여 년이 지났으니 나머지는 언제 쓰시려는가 물으면, “아흔이 넘을 때까지 살면서 다 완성을 할 테니 걱정 말고 윤 선생이나 ‘한국유학사’를 빨리 쓰시오”라고 대꾸하셨다.

중천 선생은 1994년에 국내 최초로 『중국철학사』(예문서원)를 정리해 내신 분이다. 그런데 ‘중국철학의 원류’ 부분만 내시고는 다시는 붓을 쥐지 못하게 되셨으니, 이제 한국의 어느 학자가 그 일을 이어갈 수 있을지 걱정이다.

선생이 한국동양철학계에 남긴 공로는 타인의 추종을 불허한다. 초창기에 ‘한국동양철학회’를 이끌어 반석에 올려놓으셨고, 특히 노장철학 분야에서는 학계의 연구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셨다. 동양철학계에 몸 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미 선생께 큰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런 것은 선생의 여러 면모 중 일면에 불과할 것이다. 한편으로는 꼿꼿한 선비로서 1980년대 군사독재와 맞서는 결연한 모습을 보이셨고, 또 한편으로는 그 단호함 이면에 언제나 어린 아이와 같은 순진함과 꾸밀 줄 모르는 소탈함을 간직하고 계셨다.

밤늦게 술 마시고 가다가 삼선교에서 개천으로 굴러떨어져 다쳤다며 멍든 얼굴로 겸연쩍어 하시던 모습도, 30년을 늘 입고 다니시던 색 바랜 검정 코트도 선생의 기억과 함께 남을 것이다.

지금은 어느 집의 불쏘시개가 되었을 연구실의 낡은 책상의 역사도 선생과 함께 기억될 것이다. 전임 교수로부터 물려받은 그 책상을 선생 몰래 새것으로 바꿔드렸다가 야단을 맞고 다시 찾아왔다던 제자는 이제 어엿한 중견 학자가 되어 있다. 고려대 문과대 교수휴게실에, 나의 서재에, 그리고 지인들의 집에 걸려 있을 선생의 활기 넘치는 글씨도 선생의 한 모습으로 기억될 것이다.

윤사순(고려대 명예교수·한국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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