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매각 않고 경영만 민간 위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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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정부에서 공기업 민영화가 후퇴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지분을 그대로 갖고 경영만 민간인에게 맡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말이 개혁이지 공기업으로 계속 두겠다는 뜻이다. 이는 1996년 김영삼 정부에서 추진했다 실패한 방식이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5일 “공기업에 당장 중요한 것은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라며 이런 입장을 밝혔다.

강 장관은 “역대 정부가 공기업 민영화를 꾸준히 추진했지만 주인을 놓고 국내 재벌이냐 외국인 투자자냐 논란이 계속되면서 진도가 나가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민간에 매각하는 데 시간이 걸리면 일단 지분을 정부가 갖고, 경영을 민간에 맡기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새 정부의 공기업 개혁 모델로 싱가포르의 테마섹 방식을 제시했다. 강 장관은 “정부가 공기업을 소유하되 경영만 민간에 위탁하는 싱가포르의 테마섹 방식을 연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테마섹처럼 민간 전문경영인이 공기업을 운영하다 스스로 판단해 민영화할 시기를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테마섹은 싱가포르 정부 자산을 운영하는 국영투자회사다. 싱가포르텔레콤, 싱가포르항공, 싱가포르전력 같은 굵직한 기업의 최대 주주다. 테마섹은 경영에는 관여하지 않고 민간인 경영인을 공모로 뽑아 경영과 관련한 모든 권한을 주고 있다.

하지만 이는 효율성이 떨어지거나 민간과 경쟁하는 공기업은 민영화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조언을 거스르는 것이다. 공기업 민영화는 정권 초기에 밀어붙이지 못하면 성공할 수 없기에 우려도 커지고 있다. 정부 입김이 강한 한국에서 민간인 사장에게 확실한 권한이 주어질지도 의문이다. 공모 과정에서 잡음만 일 가능성도 있다.

강원대 김광수 교수는 “정부가 공기업의 주인으로 남으면 낙하산 인사와 철밥통 같은 부작용을 깨기 힘들다”며 “공기업의 효율을 올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민영화”라고 말했다.

김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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