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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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마당이 보이는 널찍한 다다미(疊)방이었다.
『저녁진지는 몇시에 올리도록 할까요?』 『여섯시반 쯤이 좋겠지?』 남편이 길례를 돌아보고 물었다.
『네,좋아요.』 『그럼 그 시간에 안채로 모시겠습니다.』 안주인이 맵시있게 꿇어앉아 하얀 여닫이 문을 조용히 닫고 나갔다. 완벽한 매너다.
여섯시반 정각에 시중드는 여인이 나타나 안내했다.
안채 큰 방에는 이미 저녁상이 차려져 있었다.4인용 식탁에 적갈색 가라쓰야키(唐津燒)그릇 세트가 반듯하게 놓여 있다.술병과 술잔까지 가라쓰야키 도자기 일색이다.
인간문화재급의 장인(匠人)이 구워낸 것으로 우리 돈으로 환산해서 잔 하나에 5만원 정도라 한다.비싼 그 값에 놀랐으나 소박하고 품위있는 구움새의 아름다움에 감탄치 않을 수 없었다.조선조의 장인 솜씨가 살아 숨쉬는 것 같았다.
안주인이 배석하여 식사 시중을 손수 들어준다.
『주인 어른도 오시라 해서 함께 건배하십시다.』 남편의 제의에 주인이 나타나 문 앞에 엎대어 절한다.
『어서 오십시오.』 서투른 우리말로 인사한다.한국어를 배우고있는 중이라 했다.
넷이서 화기로이 건배했다.차게 식힌 청주는 맑고 달콤하다.시장기 느끼던 속으로 부드럽게 스며든다.
길례의 술 실력은 상당하다.아버지를 닮은 듯 하다.
아버지도 그랬지만 길례는 안주를 많이 드는 「술꾼」이다.그래서 좀처럼 취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안주 킬러!』 대학 때 친구들은 늘 이렇게 놀리며 불평했었다.술값이 많이 오른다는 것이었다.
오늘은 술값 걱정 안해도 되는 우아한 저녁이다.
안주도 일품이었다.가라쓰만에서 잡은 생선 요리가 식탁에 즐비하다.신선한 가자미회는 특히 맛있었다.게살 된장국도 별미였다.
게다리 삶은 물에 왜된장을 풀어 게살과 함께 살짝 끓여낸다는 것이었다.
요리법을 묻자 안주인은 이렇게 일러주기 전에 길례의 일본말에먼저 찬사를 보냈다.남편도 놀라는 눈치다.
오히려 무안했다.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열심히 공부해둘 것을….언제나 시작은 잘 하는데 끝마무리가 잘 안되는 것은 무슨까닭인가.새삼 뉘우쳐진다.
오붓하고 즐거운 저녁식사를 마치고 방에 돌아왔다.
『목욕하고 자지?』 남편이 옆방 욕실 문을 열어보고 길례에게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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