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황제에 보낸 밀서는 고종 친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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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11월 17일 을사늑약 체결 이후 대한제국과 일본의 정치지도자들이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중앙포토]

고종이 독일 황제 빌헬름 2세에게 보낸 밀서는 고종이 직접 쓴 것으로 22일 밝혀졌다. 친서의 전달자였던 황실의 프랑스인 정무 고문 알퐁스 트레믈레는 빌헬름 2세에게 친서를 전달하기 위해 독일 외무부 차관에게 보낸 편지에서 “한문으로 쓰인 황제의 자필 서신”이라고 소개했다.

국사편찬위 구선희 사료조사실장은 “고종의 친필이 비석이나 편액(건물의 중앙 윗부분에 거는 액자)에선 발견되고 있지만 어새(옥새의 높임말)가 찍힌 친필 서한은 매우 보기 드문 자료”라고 설명했다.

고종은 왜 직접 편지를 썼을까. 서울대 이태진 교수는 “을사늑약 이후 고종에 대한 감시가 더 강화돼 철저한 보안을 기하기 위해 직접 쓴 것으로 보인다”며 “독일의 외교적 협력을 끌어내야 하는 절박한 처지에서 극진히 예를 다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어 “러시아 니콜라이 2세 황제나 헐버트를 통해 9개국 정상에게 보낸 친서들에도 어새가 찍혔고 밀서와 필체가 비슷한 점으로 미뤄 고종이 직접 썼을 가능성이 짙다”고 덧붙였다.

트레믈레의 편지에는 1906년 1월 20일 작성된 훈령도 첨부됐다. 이 훈령은 1905년 12월 주독일·러시아·프랑스 공관의 공사들에게 보낸 1차 훈령과 같은 내용이 담겼다. 정황상 빌헬름 2세에게 보낸 밀서도 이 시점을 전후해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1월 29일 작성돼 런던 트리뷴지 더글러스 스토리 기자에게 맡긴 고종의 ‘국서’보다 시기적으로 앞서는 친서로 볼 수 있다.

훈령의 내용도 눈길을 끈다. 고종은 “나라의 관리와 백성의 경험 부족이 약소국의 원인이며 이 때문에 이웃 나라가 침략할 수 있게 됐다”며 당시 대한제국이 처한 현실을 냉철하게 진단했다. 훈령에 따르면 고종은 존망의 위기에 빠진 대한제국을 되살리기 위해선 개방이 최선의 길임을 잘 알고 있었다. 다음은 훈령 요약.

“짐과 백성은 날마다 이웃 나라의 침략에 눈물을 흘리면서 독립을 유지하도록 하늘이 도와주기를 빌고 있다. 지금까지 대한제국은 외국에 문호를 닫았는데 개발만 하면 한국에 번영의 길을 열어줄 비옥한 토지·광산·산림과 어장이 풍부하다. 짐은 백성들이 늘 짐을 믿고 그들의 권리를 지키기를 바라고 있다. 이 나라가 번영을 되찾으려면 과거처럼 행동해서는 안 된다. 짐은 자원을 자유롭게 개발하도록 유럽인·미국인과 다른 외국인들에게 문호를 개방하며, 일본인과 같은 권리와 특권을 주기를 바라는 바이다. 위와 같은 생각을 염두에 두고 대한제국과 우호통상조약을 맺은 우방들에 적극 요청하라.”

정용환 기자

 ◇도움 주신 분들=정상수(명지대 국제학연구소)연구교수·전정해(국사편찬위원회) 박사·파스칼 그럿트(이대 동시통역번역대학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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