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년당 7개 반씩 전교생 1500명이 공부하는 목조 학교건물 창문마다 일제히 빡빡머리 아이들이 매달렸다. 학생 대부분이 서양인을 직접 보기는 처음이었다.
이 여성은 한 교실에 들어서 교단에 섰다. 한국에 오기 전에 배운 서툰 한국어로 인사를 한 뒤 그녀는 칠판에 '심은경'이라고 또박또박 적었다. 자신의 한국 이름이라고 소개했다.'
여성으로서는 사상 첫 주한 미 대사에 내정된 캐슬린 스티븐스(55.사진) 미 국무부 동아태담당 선임고문이 한국과 맺은 인연의 첫 장면이다.
스티븐스의 부임 첫해 3학년으로 그에게서 영어수업을 들었던 '제자' 백원규(48.영어) 예산중 교사는 28일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회고했다.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 대사 지명자에게 33년전 영어를 배웠던 백원규 교사가 당시 스티븐스의 얼굴이 실린 앨범을 보고 있다. 아래는 당시 스티븐스의 공무원 인사 기록 카드.〈본사전송>
낯설고 물선 이국땅을 찾은 미국인 처녀가 현지 학생들과 친해지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생전 처음 보는 서양사람이 신기해 주변을 맴돌던 학생들은 막상 이 미국 선생님이 자신에게 말을 걸면 얼굴이 빨개진 채 도망가기 일쑤였다.
그러나 시골 학교 생활을 통해 한국을 이해하려던 이방인의 노력은 계속됐다. 항상 온화한 얼굴로 학생들에게 먼저 말을 걸며 다가가려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백 교사의 회상이다.
아이들이 보기에 '키가 커 천장에 닿을 것만 같은 여선생님'은 학교 주변에서 홀로 자취 생활을 했다고 제자들은 기억했다. 옆집에 사는 두 살 위의 '이순호'라는 여선생님과 가까이 지내면서 휴일이나 방학 때는 부여.홍성.공주 등 인근 마을을 함께 돌아다니며 열심히 배운 덕에 서툴렀던 한국말은 2년 뒤 곧잘 구사할 정도가 됐다.
지난 22일 차기 주한 미 대사로 공식 지명된 스티븐스는 미 연방의회 청문회를 거쳐 상반기 중 한국에 부임할 예정이다.
[미주중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