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 말잔치 '야스쿠니' 판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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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일본 오사카(大阪) 지방법원이 27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총리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에 대한 '위헌 확인 및 참배 중단 가처분 소송'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미묘한 판결'을 내렸다.

우선 "총리 자격으로 참배했다는 것이 상당 부분 인정된다"며 총리의 신사 참배가 헌법이 정한 '정치.종교 분리'원칙에 어긋난다는 점을 인정하긴 했다.

그러나 "총리의 참배는 위헌이며, 향후 참배를 중단케 해 달라"는 원고 측 청구는 기각했다.

이날 판결은 고이즈미 총리가 2001년 8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데 대해 '태평양전쟁 전몰자 유족과 종교인'등 631명이 총리와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에 대한 첫 심판이었다.

원고 측은 '정교 분리 위반'을 소송 제기의 이유로 들었지만 사실은 태평양전쟁 A급 전범 14명을 군신(君臣)으로 떠받들고 있는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한 것 자체에 항의하기 위해 소송이란 수단을 택한 것이다.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늘어나면서 유사 소송도 7건으로 불어났다.

이날 재판은 이 가운데 첫 소송에 대한 심리였다. 향후 유사 재판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판결이었지만 결과는 '어이없는 말잔치'로 나타났다.

고이즈미 총리가 원고 측의 소송에 대해 "이상한 사람들도 있다"고 말한 데 대해 45명이 "정신적 피해를 보았다"며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도 오사카 법원은 지난해 9월 "상대방을 배려하지 못한 점이 있지만 청구는 기각한다"는 '이상한 판결'을 내렸다.

파문을 최소화하는 데 급급했을 뿐 진실을 밝히는 데 고심하는 모습은 찾기 어려웠다.

결국 일본 사회의 양심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인 법원조차 '역사적 진실'보다는 '현실 사회와의 타협'을 택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려웠다.

오대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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