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아침] ‘조행(早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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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조행(早行)’-권벽(1520~93)

시골 여관 닭 울음에 일어나
촌길을 말 따라 타고 가는데
북두칠성도 그믐달 따라 지고
은하수는 새벽 구름과 함께 걸렸네
들길은 서리가 내려 미끄럽고
소나무 다리는 물에 쓸려 기울었네
힘겹게 십리 길 지나니 앞길이 점점 훤해지네


옛 선비가 새벽길을 나서고 있군요. 그믐이라 어둠 속에서 돌길에 미끄러지네요. 소나무 다리에 부딪치는 물소리를 들으며 위태위태하게 앞으로 나아가는군요. 얼마나 물소리가 두렵고 크게 들렸을까요. 그래도 힘겹게 새벽길을 걷다 보니 동이 트네요.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삶의 걸음걸이는 늘 험난하지만 자기의 의지를 꺾지 않으면 앞길은 차츰 환해집니다.

<박형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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