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가 아름다운 건 오아시스가 숨어 있기 때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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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호 05면

대학로의 지성을 지키는 요새이자 파수꾼 같은 인문예술서점 ‘이음아트’(기사는 8면)

“평소 자주 가는 문화 아지트가 어디입니까”라고 질문했을 때 소설가 공지영씨는 “저, 별로 문화적인 사람 아니에요. 그냥 술이나 마시러 다니죠. 호호” 하며 웃었습니다. 숱한 베스트셀러의 저자이자 이 시대 문학예술 분야의 총애받는 ‘문화 아이콘’의 대답치곤 의외다 싶었습니다.

‘도심 속 오아시스 같은 문화 놀이터를 탐방해보자’는 기획 의도가 혹여 엄숙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문화’라는 말에서 종종 느껴지는 고운 때깔, 매끈한 광택, 솜털 같은 평화, 쿨한 여유, 잰 체하는 사색, 특화된 품위 따위 말입니다. 혹시 그렇게 연상되는 이미지들이 도시를 숨막히게 하는 건 아닐까요. ‘문화인’이라는 말에서 종종 느껴지는 계몽주의적이고 엘리트 지향적인 배타성을 생각할 때 더욱 그렇습니다.

연극인 유인촌(중앙대 연극학과 교수)씨 역시 “문화 아지트랄 게 없다”고 했습니다. “공연장이며 갤러리야 늘 가지요. 하지만 그건 일이고요. 제가 쉬려고 들르는 곳은, 청계천 뒤쪽 먹자골목에 맛집이 많죠. 황학동의 곱창 골목도 잘 갑니다. 낙원상가 쪽에 삼겹살집이랑 칼국숫집, 아 좋죠. 을지로 뒷골목 곰탕집도 얼마나 구수한데요. 옛 정취가 살아 있는 곳이죠. 값도 싸고, 오래 어울리던 사람들과 가기 좋아서 일 없이 들릅니다.” 유 교수의 말이 하나의 실마리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일을 떠나 즐기는 곳, 삶의 템포를 잠시 늦추고 소통의 즐거움을 누리는 곳. 그런 곳이면 어디든 삭막한 도시에서 오아시스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소개하는 세 곳은 ‘문화’에 관한 조금씩 다른 색깔을 지녔습니다. 클래식 음반 전문매장 ‘풍월당’은 소위 고급문화의 향기가 물씬합니다. 영문학자 매슈 아널드가 말한 ‘중산계급의 교양’이며, 인간의 보편적 완성을 지향하는 심미적 유산이라 할 만합니다. 인문예술서점 ‘이음아트’는 성찰하는 문화의 편린을 보여줍니다. 이곳에서 문화란 삶의 양식, 즉 ‘나홀로 섬’인 사람들을 이어주는 심성과 연대 같은 것입니다. 미디어극장 ‘아이공’은 ‘삐딱하게 보기’로서의 문화입니다.

우리 사회의 지배적인 문화에 반기를 들고, 대안적인 삶의 관점을 포착해 보려는 젊음의 해방구이지요. 모두가 21세기의 메트로폴리스 서울에서 ‘잘 살기 위한’ 몸부림이자 축제입니다. “사람들은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죽기 위해 도시로 온다”고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읊었지만, 결국 도시의 숨구멍은 어떻게든 살려고 하는 이들로부터 뚫려온 것 아니었던가요. 부속으로 붙인 ‘문화명사들의 비밀 놀이터’에서 은밀한 도시의 숨결을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사진 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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