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김용철 사건 맡은 검사인데 … ” 훔친 수표로 5000만원짜리 쇼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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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지난해 12월 28일 서울 인사동의 한 골동품점에 정장 차림의 40대 남성이 들어섰다. 그는 “내가 검사인데 김용철 변호사 사건을 잘 처리해 포상금을 많이 받았다. 대법원장에게 줄 선물이 필요하니 추천해 달라”고 여주인 A씨에게 부탁했다. A씨가 인간문화재가 만든 고려청자를 권하자 이 남성은 5000만원짜리 고액 수표를 건넸다. A씨는 이 남성이 보여준 검사 신분증을 보고 수표를 조회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신분이 드러나면 곤란하다”는 말을 듣고 이서도 받지 않았다. 하지만 3일 뒤 A씨는 은행으로부터 ‘도난당한 수표에 금액을 위조한 수표’라는 통보를 받았다.

 지난달 서울 시내 은행 두 곳에서 잇따라 발생한 수표 도난 사건의 용의자 박모(48)씨와 오모(39·여)씨가 8일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달 14일 S은행 사당동지점에서 직원들의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창구 안에 보관 중이던 수표 200여 장(1억100만원)을 훔쳐 달아난 혐의다. 이에 앞서 박씨는 같은 달 10일 K은행 신사동지점에서 직원이 자리를 비운 사이 책상 위에 놓여 있던 50만원짜리 수표책 80여 장(1억3200만원)을 훔친 혐의도 받고 있다.

 박씨는 인사동 골동품점에서 고려청자를 구입한 것을 비롯해 서울시내 금은방을 돌아다니며 500만원 상당의 금을 구입하는 등 훔친 수표로 모두 7500만원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박씨가 사기와 유가증권 위조 등 유사 전과가 10여 차례에 이르고 피해 은행의 폐쇄회로(CC) TV 화면을 판독한 결과 외모가 비슷해 유력 용의자로 지목하고 추적해 왔다.

박씨는 경찰에서 “취직을 하려고 했지만 전과자라서 아무 직장에서도 받아주지 않았고 돈이 필요해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박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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