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칼럼>관철동 시대 14.盤上혁명다케미야의 花點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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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중국의 녜웨이핑(섭衛平)과 한국의 조훈현(曺薰鉉)이 두각을 나타낼 때 일본에서도 한 인물이 서서히 힘을 드러내고 있었으니그 사람이 바로「바둑계의 낭만주의자」다케미야(武宮正樹)9단이다.다케미야는 전통적인 소목(小目)을 포기하고 화 점(花點)만 두었다.지금은 누구나 화점을 두지만 당시는 희한한 광경이었다.
3연성(三連星)4연성(四連星)을 펼친 뒤 집은 지을 생각도 않고 중앙으로만 나아갔다.
그는 허공이요,공배였던 중앙을 개척해 현대바둑의 새 지평을 열었다.사람들은 그의 바둑을 우주류(宇宙流)라 부르며 그 장쾌하고 호방함에 열광했다.
다케미야가 승률을 높일 때마다 바둑판에서 4백년간 포석의 축으로 군림했던 소목은 점차 자취를 감춰갔다.아마추어들은 너도 나도 화점을 두었다.그 풍경이 87년 무렵부터 프로세계마저 휩쓸기 시작했다.
82년 혼인보(本因坊)타이틀매치에서 다케미야의 우주류는 조치훈(趙治勳)의 철저한 실리 전법에 참담히 무너졌었다.제아무리 화려해도 이기지 못하면 소용없는 것.하나 85년부터 다케미야는그 허망한 우주류로 혼인보타이틀을 3연패했다.4 백년간 바둑이론의 기조를 이뤘던「실리」를「세력」이 추월하는 장면이었다.
이것이 다케미야의 「화점혁명」이다.중앙은 어복(魚腹)이라고도부른다.고기 뱃속처럼 깜깜한 곳이라는 뜻이 담겨 있었다.사람들은 비로소 고서『현현기경(玄玄棋經)』의 한쪽에 적혀있던 고자재복(高者在腹)의 의미에 고개를 끄덕였다.그 넉자 에 비밀이 있었다. 바둑판은 종횡 19줄,도합 3백61로로 이루어져 있다.
가장자리의 제1선은 사선(死線)이고 제2선은 패망선,제3선은 실리선,제4선은 세력선.제4선 이후는 중앙이다.
소목은 바둑판의 좌표로 볼때 「3의4」의 자리이고 화점은「4의4」에 해당한다.바둑은 실리와 세력의 조화이기에 실리선과 세력선의 접점인 소목이 당연히 포진의 요충이 되었다.그게 법이었다. 미지의 중앙을 경영해보려는 시도는 예부터 있었다.바둑판은우주의 형상을 본떴으니 3백61로는 1년을 상징하고 네귀는 춘하추동,둘레의 72로는 72절후를 상징한다.바둑판이 모가 남은고요한 땅이요, 돌이 둥근 것은 하늘이다.그렇다면 바둑판 3백61로중 제1의 요충은 중앙 한가운데의 천원,곧 태극이 아니겠는가. 하나 천원에 첫 수를 두고 시작한 바둑은 백발백중 졌다.우칭위안(吳淸源)과 기타니(木谷實)는 30년대에 중앙으로 향하는 신포석을 연구해 굉장한 화제를 모았으나 승부바둑에서는 소목을 썼다.
미답의 처녀지 중앙에 대한 꿈은 항시 실패로 끝났다.오직 고집불통 다케미야만이 그 꿈을 실현시켰다.비록 일본인이지만 현대바둑을 일신시킨 다케미야의 공적은 바둑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51년1월1일생인 다케미야는 바둑광이자,의사인 아버지에게 여덟살 생일선물로 바둑을 배웠고 기타니문하에 들어가 13세에 프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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