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북카페] ‘올바른 혁신’ 군사력보다 강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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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Made in War 전쟁이 만든 신세계
원제 War made new
맥스 부트 지음, 송대범, 한태영 옮김
플래닛미디어, 967쪽, 3만9800원

#1. 컴퓨터는 현대 첨단기기의 상징이지만 사실 제대로 된 첫 전자디지털 컴퓨터는 이미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나왔다. 암호해독과 포탄 탄도측정 등에 필요한 미국은 애니악, 영국은 클로서스를 개발했다. 그런데 영국은 전후 보안을 이유로 이를 파기했다. 하지만 미국은 이를 더욱 키워 마침내 정보혁명 시대를 열었다. 반대로 영국은 산업화 시대에 누렸던 우위를 정보화시대도 이어갈 수 있는 기회를 그만 놓쳐 버렸다.

#2. 제2차 세계대전 초기 독일 전차군단은 기동전으로 영국·프랑스·소련 군대를 유린했다. 하지만 이 ‘혁명적인 무기체계’는 1915년 영국이 창작물인 것은 물론, 기갑사단의 원형인 기계화사단도 27년 영국군이 처음 창설했다. 하지만, 영국은 유화정책에 젖어 혁신을 중단하는 바람에 30년대 들어 히틀러의 독일에 우위를 내줘버렸다. 그 결과는 참담했다.

미국 외교관계위원회의 국가안보분야 선임연구원인 지은이는 이런 사례들을 들면서 역사에서 혁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나라의 흥망과 전쟁의 승패는 지도자가 변화의 맥을 정확히 짚고 정부와 군대를 제대로 혁신했는지 여부에 달렸다고 지적한다. 역사의 변곡점마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대로 읽고 변혁의 바람을 주도한 자는 승자나 강국이 됐고, 이를 놓친 이는 힘을 잃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전쟁이라는 절박한 상황에서 나온 비범한 아이디어를 새로운 시대의 흐름에 제대로 적용했는지 여부도 국가의 흥망과 결부됐다고 주장한다.

지은이가 인용하는 17세기 스웨덴의 드라마는 혁신의 교과서 같다. 당시 스웨덴은 속령이던 핀란드를 합쳐도 인구가 130만을 넘지 않은 소국이었지만 국력, 특히 군사력은 유럽 최강이었다. 구스타프 아돌프 국왕이 왕실이나 귀족의 이익이 아닌 국가의 이익을 앞세워 대대적인 개혁을 했기 때문이다. 제대로 교육을 받은 관료들이 운영하는 근대적인 정부조직을 만들고, 조세제도를 정비했으며, 징병제를 실시했다.

구리와 철의 채광권은 물론 심지어 군수산업 독점권까지 외국 자본가에 팔아 거액의 외자를 들여왔다. 그 덕분에 충분한 군비와 무기를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스웨덴은 이를 바탕으로 한 세기가 넘게 유럽의 패권국가가 된다. 군사적으로는 물론 과학과 산업도 덩달아 발전하게 됐다. 혁신이 강국을 만들고 국민을 행복하게 한 것이다.

러시아의 근대화와 서구화를 이끈 표토르 대제의 사례는 더욱 극적이다. 그는 1700년 6배가 넘는 병력으로도 스웨덴군에 참패하자 되려 적국인 스웨덴의 부국강병책을 적극적으로 베꼈다. 그 결과 오랜 세월이 지난 뒤 설욕할 수 있었다. ‘흑묘백묘론’의 원조 격이다.

지은이는 강한 군사력이나 국력이 무기나 군사기술, 생산력 같은 물질적인 것만으론 결코 보장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특히 17세기 유럽의 또 다른 패권국가 스페인을 물리치고 해상강국이 된 네덜란드와 영국이 시장경제와 대의제가 일찍부터 발전한 나라라는 데 주목한다. 국민이 진정으로 충성하고 희망을 가질만한 국가와 사회 시스템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히틀러가 2차 대전 초기 전투에선 승리했지만 결국 과도한 욕심과 비도덕성으로 전쟁에선 패배했다는 지적이 강한 여운을 남긴다.

방대한 군사·전투·전쟁 이야기 속에서 강대국의 조건을 살필 수 있는 책이다.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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