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億臺 구기선수 투지 어디갔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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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15일 오후 한국-인도의 남자하키 결승전.
한국 선수들은 인도의 거친 수비에 쉴새없이 넘어지면서 고통스런 표정을 지었다.보기에 안쓰러울 정도였지만 이를 악물고 일어나 뛰고 또 뛰었다.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선수들은 스틱을 뒤로한 채 서로를 부둥켜안으며 기쁨을 나눴다.
국내에서는 비인기 종목으로「찬밥」신세를 면치 못하던 하키가 아시안게임에서는 효자종목임을 다시 입증한 것이다.
그러나 비슷한 시간 벌어진 남자배구 준결승에서 한국선수들은 이같은 투지를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한국은 지난달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8강에진입,금메달 후보로 꼽혔으나 일본에 3-0스트레이트로 패배,충격을 주었다.
힘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한채 3세트에 걸쳐 따낸 점수가 고작23점,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결과였다.
남자축구의 졸전도 문제였다.
월드컵 3회 연속 본선진출의 위업을 달성,금메달 보증수표나 마찬가지였으나 쿠웨이트와 우즈베크에 잇따라 발목이 잡히는등 메달권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당했다.『월드컵에서 보여준 투지와 기량은 어디로 사라졌나.』일본 기자들의 질문이었다.
남자 농구도 마찬가지.스카우트 이야기만 나오면 몇억원을 손쉽게 받는 억대선수들이 중국에 28점차로 대패,「골목대장」임을 입증했다.더욱 실망스러운 것은『질 것을 당연히 졌다』는 태도였다. 일본과의 야구 결승전에서 보여준 수준이하의 태도는 재론할필요도 없다.국내에서 인기 절정을 달리는 종목은 맥없이 무너지고 하키.핸드볼등 관심권 밖에 있는 종목은 아시아 정상에 우뚝올라서는 모순.
이는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선수들의 마음가짐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실업팀조차 없어 대학졸업후 갈곳이 없는 비인기 종목은 아시안게임이 가장 중요한 무대여서 죽자사자 뛴다.그러나 인기 구기 종목은 국내 팬들만 확보하면 인기와 부(富)를 동시에 누릴 수있기 때문에 아시안게임 같은 돈안되는(?) 대회 에 굳이 최선을 다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만일 선수들이 이런 자세로 경기에 임한다면 다음 아시안게임.
올림픽에서는 스스로 출전을 포기하는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히로시마=金相于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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