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 원조 '최풍' 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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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세기 당나라 때 중국 양저우에서 벼슬을 했던 신라 문장가 최치원의 기념관이 지난달 15일 현지에서 완공돼 개관식이 열렸다. 최치원 기념관 건설로 양저우와 상하이 일대에서는 한국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다. [양저우=연합뉴스]

중국 장쑤(江蘇)성 양저우(揚州)에 최근 신라의 대학자이자 최고 문장가였던 최치원의 기념관이 설립된 것을 계기로 한국 바람이 불고 있다. 대학생의 한국어 배우기 붐에 이어 한국 문화체험, 한국 기업인을 위한 문화행사 등이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다. 고운(孤雲) 최치원이 일으키는 강력한 한류(韓流)다. 현지 언론들은 이를 '추이펑(崔風)'이라고 부른다.

기념관은 지난달 15일 1년여의 공사 끝에 1132㎡ 규모로 완성됐다. 국무원(정부)이 승인한 중국 내 유일한 외국인 기념관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5일에는 기념관 건립에 일익을 담당했던 '21세기 한.중교류협회(회장 김한규 전 총무처 장관)'가 경내에 세운 '한.중 수교 15주년 기념비' 제막식이 열리기도 했다. 양저우는 최치원이 당나라에서의 전성기를 보낸 곳. 그의 대표작인 '계원필경(桂苑筆耕)'과 황소의 난을 토벌하자는 내용의 '토황소격문'이 여기서 나왔다.

난징시 가오춘현에 자리 잡고 있는 ‘쌍녀분’. 국내에 처음 알려진 이 묘의 비석을 한 지역 주민이 살펴보고 있다. [사진=한우덕 기자]

양저우에서는 현재 양저우대, 장하이(江海)전문대 등 중국인 학생 1000여 명이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 이곳에서 배출된 '한국통'들은 양저우뿐 아니라 상하이(上海).쑤저우(蘇州) 등 인근 지역 한국 기업에서 활약하고 있다. 21세기 한.중교류협회는 양저우대 한국학과에 한국어 학습 교재 500권을 전달하기도 했다. 김한규 회장은 "양저우는 상하이를 중심으로 한 양쯔(揚子)강 삼각주 지역 한국 기업의 인력보급 기지"라며 "양저우를 중국 내 한국학 중심지로 육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쌍녀분(雙女墳)' 복원=최치원과 여인 혼령이 나눴다는 애틋한 사랑의 설화 '쌍녀묘 이야기(雙女墳記)'의 쌍녀분이 중국에 실제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최치원은 이 무덤 속 두 여성 혼령과 하룻밤 사랑을 나눈 뒤 '쌍녀분기'를 지었고 이는 고려시대 설화집인 '신라수이전' 등에 전해지고 있다. 난징(南京)에서 남쪽으로 약 100㎞ 떨어진 가오춘(高淳)현에 자리 잡고 있는 쌍녀분은 지표에서 약 2m 높게 원형 분봉이 올라가 있고 앞에는 커다란 비석이 놓여 있다. 분봉은 동서로 약 30m, 남북으로 약 20m 크기였다. 이 무덤이 국내 언론에 알려지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설화에 따르면 최치원은 17세(874년)에 빈공과(외국인 대상 과거)에 합격한 뒤 이 지역 현위(縣尉)로 근무하던 중 이 묘의 사연을 듣게 된다. 여인 2명이 아버지가 원하지 않는 결혼을 시키려 하자 고민하다가 함께 자살했다는 얘기였다.

최치원은 그들을 위로하는 시(詩)를 지었고, 시에 감동한 혼령은 최치원이 묵었던 객사로 찾아와 술을 마셔가며 그간 쌓였던 한과 회포를 풀었다. 술로 흥취가 절정에 이르자 최치원은 서로 인연을 맺자 청해 세 사람이 베개를 나란히 하여 정을 나누었다고 '쌍녀분기'는 전하고 있다. 가오춘현은 최근 이 묘를 복원해 중요 문화유물로 지정한 뒤 관리하고 있다.

양저우=한우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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