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서 찾는 인간의 미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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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호 21면

李 반 작, ‘생태의 메아리-몸, 날마다 품어야 할’, 2007

‘이반’이란 이름은 러시아, 혹은 낯선 땅을 떠오르게 한다. 톨스토이와 솔제니친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주인공 이름이 모두 이반이다. 그래서일까. 작가 이(李) 반(67)씨를 떠올리면 이국 정취가 물씬 피어오른다. 긴 머리를 하나로 질끈 묶거나 희끗희끗한 흰 머리카락을 날리며 휘적휘적 걷는 그를 만나면 어딘가 먼 곳에서 온 듯 색다른 맛이 풍기게 마련이다.

이 반씨는 이름이 그러하듯 한국 미술동네에서 일종의 아웃사이더로 살아왔다. 그는 1980년대에 일찌감치 한반도의 분단상황을 뛰어넘으려는 치열한 몸짓으로 도드라졌다. 87년부터 벌여온 ‘DMZ 문화운동’은 미술가가 현실에 대고 발언하며 행동한 매우 드문 경우라 할 수 있다.

‘2007 아르코미술관 대표작가전: 李 반’은 지난 20년을 돌아보는 회고전이자 오랜만에 여는 개인전이다. 그동안 몸부림치듯 이 땅에서 펼쳐온 ‘이 반의 모든 것’이 널찍한 전시장에 모여 있다. ‘비무장지대를 민족 공원으로 만들자’는 작품 이후 그는 ‘분단 한반도에 사는 작가’라는 자신의 숙명을 한시도 잊지 않았으나, 때로 한숨지은 때도 있었음을 숨기지 않는다.

“타피에스 선생은 ‘예술가는 이데올로기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나도 공감한다. 그러나 이 땅에서 예술인에게 이데올로기는 어느 면에서 유익한 것일까!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내가 비무장지대 작업에 빨려 들어갔던 것을 지금도 결코 탓하지 않는다. 인류사의 대홍수를 절규하기 위하여.”

대형 트럭이 들어갈 수 있는 큼직한 작업실에 틀어박혀 그는 수없이 인간을 그렸다. 이번 전시는 그 쉼 없는 고뇌의 시간이 맺은 결과물을 내보이는 자리다. 그에게 인간, 인간의 몸은 인류의 미래를 지켜줄 ‘생태의 메아리’다. 몸은 날마다 품어야 할 천지창조의 그림자다. 구겨진 천에 탁본처럼 찍혀 나와 캔버스 위로 드러나는 몸은 보는 이에게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속삭인다.

그에게 이제 비무장지대는 인간과 인간 사이를 가르고 있는 신분과 빈부격차, 불평등과 차별의 벽이다. 그는 어쩌면 더 견고할 수도 있는 이 DMZ를 인간의 ‘몸 그림’으로 깨려 한다. 그의 이름이 주는 울림처럼, 그의 작품이 저항과 낯섦의 기세로 오늘의 메아리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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