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메스 들고, 브룩스 스쿨 다니며 서민이라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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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후보들의 가난 마케팅에 제동이 걸렸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와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는 각종 매체와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찢어지게 가난했다’ ‘힘들게 성장했다’며 어린 시절 고생담을 잇따라 털어놨다. 이들 모두 가난했던 과거를 발판으로 ‘서민경제’를 일으키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서민과는 거리가 먼 모습들이 공개돼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사진설명:미국 브룩스 스쿨(위)과 프랑스 에르메스 켈리백(아래)]

◇에르메스 켈릭백 1000여만원=이명박 후보는 ‘나의 스승은 가난과 어머니’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이 후보는 여러 저서에서 풀빵 장사로 어렵게 중학교와 고등학교(포항 동지상고)를 마쳤고 상경해 고려대 상대에 입학했지만 이태원시장에서 매일 새벽 쓰레기를 치우는 일로 근근이 학비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송영길 대통합민주신당 의원이 이 후보의 부인 김윤옥씨의 1000여만원짜리 에르메스 켈리 백을 든 사진을 공개해 일부에서는 다소 실망한 모습이었다. 이후보 측은 한국타이어 부사장인 사위가 회갑 선물로 줬다고 해명했지만 서민 이미지에는 큰 타격을 줬다.

◇브룩스 스쿨 학비 4000여만원=‘평화대통령’이 되겠다는 정동영 후보는 “‘평화’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동대문 평화시장이었다”며 “대학 시절, 홀어머니와 함께 직접 만든 옷을 시장에 내다 팔아 온 가족의 생계를 꾸려나갔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정 후보의 큰아들이 다닌 미국 브룩스 스쿨이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4.15 총선 당시 한 의원은 정 후보의 장남에 대해 “학비만 해도 연간 6000만원이 넘는 미국 보스턴 명문사립고에 유학을 보냈다”고 주장했고 이에 열린우리당 측은 “1년 학비와 기숙사비를 포함해 우리돈 3600만~4000만원 정도의 송금기록도 있다”고 맞불을 놨었다.

범여권 장외주자인 문국현 후보는 최근 이런 분위기를 감지한 듯 얼마전 개최한 ‘작은 청문회’에서 “두 딸이 유학을 간 적도 없고 지금은 비정규직, 반실업 상태다”라고 말했고 민노당 권영길 의원도 “제 자식들도 유학을 갔다. 노동자의 자식도 유학을 갈 수 있게 만들겠다”고 우회적으로 서민임을 강조했다.

한 선거전략 컨설턴트는 “후보들이 시장통을 돌아다니며 서민적인 이미지로 승부수를 던지지만 고가 물건에 호화 유학설이 퍼지면 역풍을 맞을 수 있다”며 “가난했던 과거를 돋보이려 하지 말고 앞으로 만들어갈 국가 청사진을 제시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라고 말했다.

이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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