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거기 그녀가 서있는걸보았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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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3.실종 ○33 배가 바다의 물살을 가르며 달렸다.홍도는 멀고 먼 섬이었다.
섬이라고 하면 멀리에 있든 가까이에 있든 벌써 잔뜩 고립된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게다가 거리까지 머니까 어쩐지 더욱 막막해지는 느낌이었다.망망대해의 가운데에 홀로 우뚝 서 있는 섬,파도에 둘러싸여 둥둥 떠 있는 섬,사방의 길이 모두 막혀 있어서 그속에서만 맴돌아야 하는 섬,아 거기에 갇히면 도망칠 길이 없는 섬….
우리를 태운 배가 엔진을 끄고 홍도의 선착장에 다가가는데,부둣가 언덕 위에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내려다보고 있었다.선착장이야말로 이 섬의 유일한 출입구라고 했다.마중나온 사람,배웅나온 사람,그리고 섬을 떠나려는 사람,배가 싣고온 짐을 찾으러 나온 사람,관광객들에게 숙소를 소개해주려는 사람… 사람들의 복장이 울긋불긋해서 외로운 섬이라는 이미지는 곧 사라져버렸다.
『멀리를 봐.저쪽에 집들이 모여 있는 델 잘 보란 말이야.…망원경이 있어야 하는 건데 그랬어.』 배에서 육지로 가는 계단을 건너기 위해 줄을 서 있다가 내가 상원에게 속삭였다.
『망원경은 왜…?』 만약 써니가 이 섬에 붙잡혀와 있다면 그집에서 빠져나와 마음대로 선착장까지 나와서 서 있지는 못할 거였다.그렇지만 배가 들어올 때면 멀리서라도 내다보고 있기는 할것 같았다.그래도 써니는 내가 여기까지 찾아오리라고는 상상도 안하 고 있을 거였다.아 바보같은 계집애….
『아냐 됐어.난 그냥 혹시나 하고 그랬는데… 됐어.』 나는 여관에서 나와 있는 사람들 가운데에서 조금 엉성해보이는 우리 또래의 사내아이를 택했다.빨간 야구모자를 쓴 사내아이가 안내하는대로 바닷가로 난 길을 따라 걸으면서 내가 물어보았다.
『아가씨들이 좀 있나요.같이 놀만한.』 빨간모자가 씨익 웃었다. 『가시내들끼리 온 것들도 쫘악 깔려 있어요.』 『아니 내말은 그런 게 아니라,그러니까… 돈을 주고 같이 노는 여자들도많다구 해서 온 거거든요.』 『거저도 좋다는 물좋은 가시나들이많은데… 뭣땜시 돈을 주고 해요.나이먹은 아저씨들도 아닌 사람들이.』 빨간모자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조언해주었다.
나는 불쑥 주머니에서 써니의 사진을 꺼내서 빨간모자에게 내밀었다. 『사실은 이 여자애를 찾고 있어요.누가 그러는데 홍도에와 있다는 겁니다.이건 거의 확실한 정보거든요.』 빨간모자가 사진과 우리를 번갈아 보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섬에서 장사를 하는 여자들이 많나요? 몇명이나 되죠?』상원이었다.상원이가 배낭을 길가에 내려놓고 주저앉았다.한적한 곳에서 이야기나 좀 나누고 가자 그런 뜻인 것 같았다.
『주로 여름철 몇달 장사를 하고 떠나는 여자들이니까 내가 다알 수야 없는데… 여하튼 몸조심해야겄소.쉽게 내줄까 모르겠네.
』 상원이와 내가 얼굴을 마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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