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 피는 꽃 활짝 못 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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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강일구

부모들은 내 아이가 또래보다 빠르다 싶으면 ‘앞서 가는구나’라며 기분 좋아 한다. 하지만 성장과 발달은 남달리 늦을 때는 물론 빠를 때도 문제가 될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사춘기가 지나치게 빨리 시작되는 ‘성(性) 조숙증 ’이다.

 성 조숙증은 말 그대로 성 발달이 빨라져 2차 성징이 일찍 나타나는 병. 생식기가 생식 활동을 위해 본격적인 변화를 시작한다. 성 조숙증을 앓게 되면 자기 몸 관리에도 가끔씩 어머니의 잔소리가 필요한 어린이가 성적 변화를 감당해야 하는 난감한 상태에 직면한다. 또래로부터 놀림을 당하는 것도 문제가 된다.

◆정상적인 사춘기는=통상 사춘기 성 발달은 여자는 평균 4년(1.5~8년), 남자는 평균 3년(2~5년)에 걸쳐 나타난다. 여자 아이의 경우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가슴이 나오는 (만 11세) 것이다. 이후 6개월에서 1년쯤 지나면 음모가 나오고, 이로부터 또 1년이 흐르면 초경이 시작된다. 우리나라 평균 초경 연령은 12.8세(10.8~14.8세)다. 남학생은 고환이 커지면서(10~16세) 사춘기가 시작되는데 차츰 음낭의 피부색이 짙어지고 음경이 커지면서 음모가 자란다. 평균적으로 사춘기 때 고환·부고환은 7배, 음경은 2배 커지며, 사정(射精)은 대부분 중학생 때면 가능해진다. 사춘기 땐 성적 변화뿐 아니라 키와 몸무게도 급성장한다. 키의 경우 한 해에 여학생은 9㎝(6~11㎝), 남학생은 10㎝(7~12㎝)까지 자랄 정도며, 몸무게는 성인 체중의 약 50%가 사춘기 때 늘어난다. 또 골 성숙도 일어나 뼈끝 부위의 골단 융합이 일어난다.

 ◆여자 8세, 남자 9세 이전에 사춘기가 시작되면=초등학교 2학년 L양(7)은 목욕을 함께 하던 어머니가 딸의 가슴이 나오기 시작하는 것을 발견해 병원을 찾았다. 성호르몬 검사와 뼈 나이를 측정한 결과 ‘특발성 성 조숙증’으로 진단받았다. 막 사춘기가 시작되는 것으로 나타난 것. 성 조숙증은 L양처럼 사춘기 변화가 여자 아이 8세, 남자 아이 9세 이전에 시작되는 병이다. 신체적 성숙과 달리 정신 연령은 자기의 실제 나이에 맞게 발달한다. 그 결과 성 조숙증 자체가 정신적 이상을 초래하진 않지만 정신 발달과 신체 발달이 균형감을 상실해 종종 정서 불안을 동반하기도 한다.

 성 조숙증에 걸리면 뼈의 성장이 일찍 멈춘다. 처음에는 빨리 자라는 것 같지만 결국 뼈를 자라게 하는 골단의 성장판이 조기에 닫혀 최종 신장이 작아진다.

(左)성장판이 닫힌 손. 뼈마디가 융합돼 있다. (右)성장판이 닫히지 않은 손. 손가락 뼈마디의 말단부가 뚜렷이 보인다.

◆여자 환자가 발견도 쉬워=성 조숙증을 앓을 때, 여자 아이는 사춘기 첫 신호로 가슴이 나오기 때문에 부모의 눈에 쉽게 띄고, 병원도 빨리 찾는다.

 반면 남자 아이들은 고환이 커지는 현상을 부모가 알아채는 경우가 드물다. 그 결과 사춘기가 한창 진행된 뒤에야 병원을 찾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남자 아이에게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키의 급성장. 통상 두 돌이 지나면 사춘기가 될 때까지 매년 5~7㎝ 정도씩 일정하게 자란다. 따라서 유아기를 막 벗어난 아이가 전년도에 크던 속도에 비해 갑자기 1㎝ 이상 많이 자란다 싶으면 병원을 찾아 성 조숙증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치료 목표는 사춘기 지연=성 조숙증 원인(표 참조)은 다양하지만 시상하부-뇌하수체-생식기에 이르는 성선축이 조기 발달해 성호르몬이 분비되는 ‘완전 성 조숙증’ 환자가 가장 많다. 이 경우 가장 중요한 치료 목표는 성선을 자극시키는 호르몬과 유사한 약물을 3~4년 이상 투여해 이 기간 중 성선 발달(사춘기 변화) 자체를 지연시켜 사춘기를 또래와 비슷하게 늦추는 데 있다. 통상 치료는 여자 아이는 키가 150㎝ 이상 자라거나 생리를 감당할 수 있을 때, 남자 아이는 키가 160㎝ 이상 자랐다 싶을 때까지 계속 받아야 한다.

황세희 의학전문기자·의사
◆도움말=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신충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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