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청계천의 추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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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한나라당 이명박 대통령 후보는 경북 포항 달동네에서 상경한 직후 “청계천에 가면 대학입시 중고 참고서를 싸게 살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태원시장에서 잡일을 해주고 모은 돈을 들고 청계천 헌책방 거리를 무턱대고 찾아갔다. 한 가게에 들어가 물었다. 40대쯤 돼 보이는 주인. “무슨 과목을 찾는데.” “사실 시골에서 막 올라와 무슨 책을 봐야 할지 잘 몰라요.”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문과니, 이과니?” (이과·문과란 말을 잘 몰라) “상과대학을 가고 싶은데요.” “야, 그게 바로 문과야.” (주인은 주섬주섬 알아서 책을 고른 뒤 주판을 두드려 보더니) “싸게 쳐 3만환이다.” “톡톡 털어 1만환밖에 없는데요.” “바쁜 어른 세워 놓고 장난하니?” 호되게 야단을 맞았다. (이명박, 『신화는 없다』) 시골 청년 이명박한테 청계천은 헌책방과 가난의 씁쓸한 기억으로 각인돼 있을지 모르지만, 청계천에 얽힌 사연이 사람마다 같을 순 없다.

‘정이월(正二月)에 대독 터진다는 말이 있다. 그래도 이곳 빨래터에는 대낮에 볕도 잘 들어, 물속에 잠근 빨래꾼들의 손이 과히들 시렵지 않은 모양이다.’(박태원, 『천변풍경』) 복개 전 청계천에서 아낙네들이 빨랫방망이를 두드리던 정경을, 환갑 넘긴 서울 토박이라면 기억한다. 소설 『천변풍경』은 ‘청계천 빨래터’ ‘이발소 소년’ ‘여급 하나코’ 등으로 이어지는 1930년대 청계천 소외계층의 희로애락이다. 일제 강점기 서울 꼬방동네의 이야기 쪽지 50편을 병풍처럼 이어 붙였다.

청계천 버들다리의 전태일 동상은, 인근 평화시장 한복판에서 ‘아름다운 청년’이 몸을 불사른 70년 11월로 시계를 되돌린다. ‘…열사의 애띤 동상 아침 햇살 모아 깔린 무수한 추모의 시 반짝이고/고사리 시린 손 생살 으스러지는 시간을 견디며 허리 휘인 꽃봉오리 고단한 미싱 소리 들리는데….’(이난오, 『청계천 버들다리』)

대통합민주신당의 대선 주자가 된 정동영 후보는 대중 유세 때 청계천에 얽힌 학창시절 가족사를 토로하곤 한다. “어머니는 미싱으로 아동복 박음질을 하고, 저는 옆에서 끝처리를 해 청계천 평화시장에 내다팔아 생계를 이었습니다.”

이명박·정동영 후보 공히 청계천은 그저 가난의 옛 추억일 뿐일까. 한쪽은 청계천 복원을 회심의 치적으로 되뇌고, 또 한쪽은 ‘개성공단 업적이 이를 능가한다’고 청계천을 맞받아칠 태세이기에 떠오른 의문이다.

홍승일 경제부문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