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월(正二月)에 대독 터진다는 말이 있다. 그래도 이곳 빨래터에는 대낮에 볕도 잘 들어, 물속에 잠근 빨래꾼들의 손이 과히들 시렵지 않은 모양이다.’(박태원, 『천변풍경』) 복개 전 청계천에서 아낙네들이 빨랫방망이를 두드리던 정경을, 환갑 넘긴 서울 토박이라면 기억한다. 소설 『천변풍경』은 ‘청계천 빨래터’ ‘이발소 소년’ ‘여급 하나코’ 등으로 이어지는 1930년대 청계천 소외계층의 희로애락이다. 일제 강점기 서울 꼬방동네의 이야기 쪽지 50편을 병풍처럼 이어 붙였다.
청계천 버들다리의 전태일 동상은, 인근 평화시장 한복판에서 ‘아름다운 청년’이 몸을 불사른 70년 11월로 시계를 되돌린다. ‘…열사의 애띤 동상 아침 햇살 모아 깔린 무수한 추모의 시 반짝이고/고사리 시린 손 생살 으스러지는 시간을 견디며 허리 휘인 꽃봉오리 고단한 미싱 소리 들리는데….’(이난오, 『청계천 버들다리』)
대통합민주신당의 대선 주자가 된 정동영 후보는 대중 유세 때 청계천에 얽힌 학창시절 가족사를 토로하곤 한다. “어머니는 미싱으로 아동복 박음질을 하고, 저는 옆에서 끝처리를 해 청계천 평화시장에 내다팔아 생계를 이었습니다.”
이명박·정동영 후보 공히 청계천은 그저 가난의 옛 추억일 뿐일까. 한쪽은 청계천 복원을 회심의 치적으로 되뇌고, 또 한쪽은 ‘개성공단 업적이 이를 능가한다’고 청계천을 맞받아칠 태세이기에 떠오른 의문이다.
홍승일 경제부문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