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제1년>1.갈길 멀지만 첫돌 걸음마 성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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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금융실명제=경제정의의 실현.」 이제는 이같은 등식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실명제 시행 1년이 남긴 足跡을 놓고『도대체 무엇이 바뀌었느냐』는 酷評과『큰 부작용없이 실명제에 대한 인식을 넓힌 것만 해도 큰 수확』이라는 好評이 엇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실명제의 着根을 위해 「실명제는 경제정의및 富의정당성확보를 위한 필요조건」이라는 등식을 다들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실명제 1년의「중간 평가」와 함께 앞으로의 과제들을시리즈로 엮는다.
[편집자註] 한 여름 밤의 「깜짝 쇼」로 시작됐던 금융실명제가 시행된지 어느덧 1년이 됐다.
그동안 우리 경제는 실명제외에도 금융자율화.시장개방등「열린 경제」로 가기 위한 수많은 변화와 개혁이 있었기 때문에 실명제하나만을 따로 떼어서 경제에 미친 영향을 가늠해보기는 매우 어렵다.또 넓은 의미의 실명제(종합과세가 실시되고 차명거래도 존재하지 않는등)는 아직 도입조차 되지않은 상태에서 1년동안의 변화만으로 功過를 論하는 것은 時機尙早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 실명제가 성공했느냐 실패했느냐를 따지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오히려 실명제가 성공적으로 완결되기 위해서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머리를 맞대야한다.
모든 정책이 기본적으로 지향하는 「부작용은 최소한,효과는 최대한」이라는 명제에 비춰볼 때 실명제는 우선 「부작용」부분에서적지않은 우려가 사라졌다.
주가 폭락이나 부동산 투기및 중소기업들의 연쇄 도산같은 사태가 빚어지지 않았다.오히려 주가는 오르고 금리.땅값은 내리는등경제 전반의 안정기조가 유지되고 있다.
물론 중소기업들의 부도율이 높아지고,여행수지 적자가 말해주듯『우선 쓰고 보자』는 일부 계층의 과소비 현상이 두드러지긴 했으나 「개혁의 비용」측면에서 볼 때 종합적으로는 비교적 싼 값을 치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실명제가 지향했던 「깨끗한 정치,튼튼한 경제,건전한 사회」가 현실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아직 갈길이 멀다.
우선 실명제가 실시됐다는 것 자체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많다.가명은 없어졌으므로 형식상 실명제는 됐으나 借名,심지어는 盜名도 아직 남아있어 진정한 의미의 실명제는 아니라는 이야기다. 借名의 존재는 실명제의 부작용을 더는 데에「일조」를 하기도했다. 일시에 가명거래가 중지됨으로써 나타날 충격을 차명이 상당 부분 흡수,도피처를 제공했다는 것은 張玲子사건등 그간의 각종 실명제 위반사례 곳곳에서 이미 드러나있다.
〈 閔丙寬기자〉 정부 스스로도 『차명거래를 일시에 없애는 것은 많은 국민을 잠재적인 범법자로 만들고,혼란을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다』고 판단,늦추고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실명제 부작용이 없다고 좋아할 것이 아니라 언젠가는 넘어야할 「차명거래」라는 山을 넘을 때 나타날지도 모르는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정부는 장기대책을 세우고 국민들은 인식을 새롭게 하는 것이 「실명제 정착」의 지름길이 다.
이와관련,종합과세를 예정대로 시행하는 것도 큰 과제다.금융소득(이자.배당)에 대한 종합과세는 차명을 상당부분 해소할 것이지만 그에 따른 저항이나 마찰도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이를 위해서는 전반적인 세율인하등 정지작업도 필요하다.정부도 올들어 대대적인 세제개편에 나서고 있으나 늦은 감이 있다. 이와함께 ▲통합선거법에서 「비밀보장」의 예외를 인정해준 것을 계기로 앞으로 공익과 비밀보호가 충돌할 여지가 많아진 만큼이에 대한 원칙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고▲사채시장 정비와 이에따른 중소기업들의 자금난 해소문제▲도장대신 서명거래 를 확대하는등 금융시장 정비▲주식 양도차익에 대한 과세준비등도 과제로 남아있다. 실명제는 이제부터 시작단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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