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거기 그녀가 서 있는걸 보았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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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그야말로 써니의 속눈썹이 몇개인지를 헤아릴 수도 있을 정도의거리였다.써니도 내 눈길을 피하지 않았다.나는 이제 내가 어떤행동을 하든 써니가 놀라지 않고 나를 받아들일 거라는 걸 알고있었다.그러나 나는 점점 더 숨이 막혀서 자 꾸만 마른 침을 꿀꺽꿀꺽 삼켰다.
그렇지만 나는 써니에게「처녀인척 하는 법」을 실연할 기회를 선뜻 주지 못했다.왜냐 하면 사실 나는 마음 뿐이었다.구체적으로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나는 알지 못했다.
유사시에 남자가 여자를 능숙하게 리드하기 위해서는 미리 미리익혀두어야 했다고 나는 후회하였다.유비무환이라는 말은 언제 어디서나 해당되는 말이었던 거였다.
써니는…말없이 숨소리만 쌔액쌕대고 있었는데,사실 조금은 나를답답해 하는 것 같았다.뭐하니 멍달수,이렇게 기다리고 있잖아.
써니의 반짝이는 눈빛이 나를 재촉하고 있었다.
『누가… 언제 올지 모르잖아 그치…?』 마른 침을 또 한번 삼키며 내가 겨우 토해낸 소리였다.
써니가 말없이 침대에서 일어나더니 책상 위 스탠드의 불을 꺼버리고 다시 누웠다.처음에는 아주 깜깜했다.그러다가 차츰 어둠에 눈이 익으면서 써니의 형태를 겨우 알아볼 수 있게 되는 동안 나는 참 많이도 주저하고 망설였다.아랫도리는 아랫도리대로 잔뜩 들고 일어나서 나를 못살게 굴었다.침대에 엎드려 있기가 불편할 정도로 뜨겁게 봉기한 거였다.
하지만 써니엄마가 갑자기 들이닥칠지도 몰라.그리고 잘못하면 써니가 임신하게 될지도 몰라.그리고… 내가 잘하지 못하면 써니가 날 우습게 볼거야.아니 하여간 그건 선뜻 내가 의연하게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벅찬 행운이었다.
불을 끄고 나서 한동안 써니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것 같았다.써니는 어둠 속에서 내 한손을 찾아서 쥐고 가만히 있다가 소리를 냈다.
『무슨 생각해…?겁나니.』 『아니 그게 아니구… 아니 모르겠어.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써니가 내 손을 놓고 침대에누운 채로 티셔츠를 벗었다.그리곤 양손을 뒤로 해서 브래지어를풀었다.그러는데 나는 숨이 턱 턱 막혔다.원 세상에… 믿어지지않는 일이었다.이러는 건 소문으로나 들어본 일이었다.
나는 에라 모르겠다 하면서 옷을 벗어던졌다.나는 한꺼번에 밑에까지 다 벗어버렸다.그리고 모로 누워서 써니를 가만히 안았다.써니의 가슴이 내 가슴에 닿았다.내 가슴이 쿵쾅거리는 걸 써니도 느낄 거였다.나는 한손으로 써니의 잔등을 어 루만져주었다.써니가 갑자기 팔에 힘을 주고 나를 꼬옥 껴안았다.
내가 겨우 속삭였다.
『쪼끔… 떨리기는 하지만 너무 좋아.』 『떨지 마.나두 떨지않는데 뭐.』 『근데 이제부턴 어떻게 하는 거지…?』 써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어디선가 멀리서 개짖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써니의 이마에 살며시 입술을 댔고 눈꺼풀에도 입술을 댔고 콧등에도 뺨에도 귓불에도 입술을 댔다.그리고 나서 우리는 오래오래 입술끼리 서로를 감촉하고 있었다.그야말로 밤이었고 침대였고,써니와 나는 더 갈 데없이 서로를 원하는 여자와 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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