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독재… 비참한 말년/29일 타계한 호네커 전 동독 국가원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베를린장벽 붕괴후 망명생활/92년 통독 송환… 간암에 시달려
칠레에서 망명생활을 하던 에리히 호네커 전 동독 국가평의회 의장(국가원수)이 29일 지병인 간암으로 사망했다. 81세.
30일 화장돼 한줌의 재로 돌아가는 호네커의 비참했던 말년은 18년간 최고권좌에 군림하면서 온갖 전횡을 일삼아 온 독재자에 대한 인과응보라 할 수 있다.
지난 89년 10월18일 자유를 갈망하던 구 동독 주민들의 도도한 민주화 물결에 밀려 권좌에서 밀려나면서 호네커의 비극은 시작됐다. 자신이 직접 진두진휘해 건설했던 베를린장벽이 붕괴된지 두달후인 90년 1월,그는 권력남용·부정부패·반역·살인 등의 죄목으로 체포됐다. 그러나 베를린 근교 소련군 부대에서 요양을 하던 호네커는 91년 소련군의 협조로 모스크바로 전격 탈출했다.
통일과 함께 주권을 회복한 독일정부로서는 이를 소련측에 의한 주권침해로 간주,이 문제는 당시 소련과 독일 사이의 외교현안으로 등장했다.
결국 독일로부터의 경제지원이 절실하던 소련,그리고 러시아는 호네커를 독일에 인도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호네커가 다시 모스크바주재 칠레대사관으로 피신,마지막 발버둥을 치자 이 문제는 다시 독일과 칠레의 외교문제로 비화됐다. 칠레가 이처럼 호네커를 비호한 이유는 지난 70∼80년대 칠레의 정치범들을 호네커가 받아준데 대한 감사의 표시였다.
이 즈음 북한이 호네커의 망명을 받아 들이겠다고 제의,우리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결국 92년 독일에 강제송환 된 호네커는 같은해 11월 베를린의 법정에 섰다.
그러나 이미 말기 간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던 그에게 베를린지방법원은 93년 1월13일 재판중단을 결정,석방했고 다음날 그는 딸이 살고 있는 칠레로 망명길에 올랐다.
35년부터 45년 2차대전 종전 때까지 나치의 교도소에 투옥됐던 호네커는 실력자가 됐고 76년에는 국가평의회 의장에 취임,명실공히 국가원수가 됐다.
87년 서독을 공식방문,동독 국가원수로서의 예우를 받아 그로서는 인생의 전성기를 기록하기도 했다.
71년 발터 울브리히트에 이어 당총서기에 올라 분단독일의 한편에서 최고실력자로 군림해왔던 그는 결국 죽어서도 욕을 먹고 있다.
『그의 정책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줬다』(디터 포겔 독일정부 대변인),『그의 이름은 영원히 베를린장벽과 붙어다닐 것이다』(에버하르트 디프겐 베를린시장)….<베를린=유재식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