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깔논쟁 진화 나선 여권/“사람쓰는 기준 변화” 파문차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김영삼대통령은 9일 민자당 고문들을 청와대로 초대해 오찬을 베풀며 노고를 치하하고 협조를 당부했다.
표면적으로 보면 당총재가 할 수 있는 예사로운 행사지만 이번 행사가 있게 된 배경을 보면 여권의 고민을 알 수 있다.
우선 당운영에 소외돼 불만이 가득찬 고문들의 심사를 달래는 목적도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신경을 쓰는 것은 요즘 당에서 제기되고 있는 색깔논쟁이다.
여권 일각에서는 청와대내에 김정남 교육문화사회수석을 「정점」으로 하는 소위 진보파가 상당수 포진,정책을 주도해가고 있다는 시비를 제기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들이 지목하고 있는 「문제」의 비서관·행정관 12명중에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벌받은 사람이 있을 만큼 못미덥다는 것이고,더욱이 이들의 청와대내 발언권이 강한 것이 탈이라는 식이다.
이에 대한 청와대의 반응은 『대학시절 좌파적 사고를 한번 안해본 사람이 어디 있느냐,민주화 투쟁을 하다보니 자신도 모르는 보안법에 걸려든 것』이라며 시비를 일축하고 있다.
지목을 받고 있는 김 교문수석도 이의 해명을 위해 적극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번 당고문회의에서 색깔론을 제기한 민자당 박용만고문은 9일 아침 『오늘 청와대에 가서 재야의 강경파를 원칙없이 영입하는 우리 당을 국민들 다수가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 점을 얘기하겠다』고 했다.
박 고문은 현재 작업중인 부실지구당 정비대상에 자신(서울 성동병)이 포함된데 대해 분통을 터트리면서 제기한 「색깔론」을 김 대통령 앞에서 다시 거론하겠다는 것이다.
청와대나 민자당은 이같은 색깔론이 당에 이로울 것이 없다는 판단에 따라 진화에 나서고 있다.
○…민주계 원로인 박 고문이 지난번에 이 문제를 꺼내 당내 이념갈등의 조짐을 보이자 민자당 당직자들은 「사람쓰는 기준」이 변화하고 있음을 은근히 설명하면서 파문을 차단하고 있다.
당장 색깔론의 대상이 된 김문수위원장(부천 소사)에 대해 『노동전문가이며 지역주민들에게 인기가 좋다』(문정수 사무총장)며 전문성과 현지 지명도를 강조하고 있다.
그동안 김씨의 영입을 「개혁보강」 측면에서 초점을 맞춰 선전했던 기조와는 다르다.
실제 이번 2차 지구당 위원장을 교체하는 작업을 하면서 민자당이 가장 내세우는 것이 「국가경쟁력에 어울리는 이미지를 갖춘 전문가」 발굴이다.
이제까지 민주화경력이나 개혁성향을 우선시하고 재야를 환영했던 흐름과는 차이가 난다.
최재욱 사무부총장은 『신임지구당 위원장은 참신성과 지명도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전문가가 최적격』이라고 했다.
재야출신 이재오·이우재·장기표씨의 영입문제는 자연히 주춤거리는 기색이며,일부를 영입한다해도 의미부여를 크게 하지 않을 분위기다.
한 당직자는 『이런 방침이 자연스럽게 색깔론이 번지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김현일·김기봉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