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광장>일상의 틀 벗는 여행의 기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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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서울에서 근 3년을 살다보니 이젠 이 큰 도시의 소음.혼잡한교통.오염,그리고 이 많은 사람들이 자아내는 그날 그날의 스트레스도 의식하지 못하게됐다.두달전쯤 친구를 만나러 부산에 갔다가 내가 일상생활에서 겪는 긴장이 어느정도인지 깨닫게됐고,새삼그 긴장을 풀수 있는 방도가 떠올랐다.
그때 나는 지극히 편안했고 곧 내가 부산에 와서 이처럼 느긋한 느낌을 갖게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를 생각해봤다.그것은 무엇보다 내가 휴가중이었다는 점때문이었다.더구나 허물없이 대할수 있고 취미와 관심사를 같이할수 있는 가까운 친구와 함께 지낸다는 것은 여간 위로가 되는 일이 아니다.
부산은 크기가 서울의 3분의1 정도밖에 안되며 따라서 사람도,자동차도,오염과 소음도 서울보다 훨씬 적다.친구와 나는 부산을 벗어나 남원과 지리산 쌍계사까지 갔는데 그곳까지 가는동안 교통이 혼잡하지 않고 시간도 많이 걸리지 않았다.
또 부산시내를 벗어나면서 부터는 사람도 많지 않아 좋았다.시골 풍경을 보면서 나는 일종의 靈的 再生을 하는듯한 느낌에 빠져들었다.하늘은 높고 푸르렀으며 햇빛은 따사로웠고,눈덮인 높은산의 능선이 저멀리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다.지리산 이 가까워지자 눈이 내리기 시작했는데 눈송이속으로 보는 산골짜기가 마냥 평화롭게만 느껴졌다.들에는 여기 저기 푸릇푸릇한 곳이 있었는데농부들이 못자리를 해놓은 곳 같았다.
도로옆을 흐르는 강물은 푸른 빛이었으며 꽃망울을 터뜨린 개나리와 진달래등 봄꽃들은 한껏 자태를 뽐내며 봄소식을 알려주고 있었다.음산하고 우울했던 겨울이 지나고 이렇게 밝은 색깔을 보게되니 불쾌하고 우울했던 생각이 모두 씻겨내려가는 것같았다.
이렇듯 여행은 우리에게 새로운 세상,새로운 생각,새로운 시각을 열어주고 삼라만상속에서 우리가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가를 일깨워준다.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이렇게 다짐했다.이제부터는 생활에서 오는 긴장이 감당하기 어렵 다고 느껴질때면 가방에 짐을 챙겨 기차를 타고 훌쩍 여행을 떠나리라.서울을 떠나 시골로 가 진짜 한국을 찾아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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