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잔] "율곡이 제시한 지도자론, 지금 읽어도 유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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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성학집요(聖學輯要)』는 한국적 리더십에 관한 교본이자 조선 선비들이 성리학을 공부하기 위한 필독서였죠.”

 조선시대 거유(巨儒)이자 뛰어난 정치가였던 율곡 이이의 성학집요를 20여 년만에 국역(청어람미디어 간)한 김태완(43) 국사편찬위 연구원. 책의 의의를 설명하는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확신이 넘쳤다. 그럴 만한 것이 이 책은 왕을 위한 경연(經筵·임금을 위해 신하가 경서 및 왕도를 강론하던 일)에 쓰였을 뿐 아니라 사서삼경과 더불어 선비들이 늘상 곁에 두고 읽었던 명저였다. ‘성학(聖學)’은 성인이 되기 위한 학문이니 제왕은 물론 선비들에게도 필요한 책이었으리라.

 “요직을 두루 거쳐 남다른 경륜을 지녔던 40세의 율곡이, 명종의 뒤를 이어 아무 준비 없이 왕위에 오른 젊은 임금 선조를 위해 쓴 필생의 대작입니다. 갖가지 경전과 사서(史書)에서 지도자에 도움이 될 핵심을 가려 뽑고 자신의 견해를 더한 것으로 당나라의 『정관정요』, 서양의 『군주론』에 견줄 만한 제왕학 교본이라 할 수 있죠.”

 책은 조선시대 지식인상을 소개하려던 출판사가 숭실대에서 ‘율곡의 실리사상에 관한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그에게 번역을 의뢰해 만들어졌다.

 “시대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지고 자신의 이상을 실천하려 애쓴 ‘행동하는 지식인’이란 점에서 매력을 느꼈죠.”

그가 일찍이 율곡에 반한 이유다. 그는 책의 체계가 사서인 ‘대학(大學)’을 따르는 등 전형적인 유학 책이지만 21세기에도 읽어볼 가치가 있다고 했다. 관료시스템이 발달한 현대에 지도자의 책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바람직한 가치, 우리가 지향할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기에 이 책은 여전히 유용하다는 설명이었다.

 “고전은 시대의 검증을 받은 책이란 점도 그렇지만 우리의 상황은 우리 문화의 틀로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서 책의 위정편 식시무 장을 예로 들었다. 나라 경영의 근본은 창업과 수성, 그리고 경장(更張· 개혁)인데 수성의 시기에 경장을 하거나 경장의 시기에 수성을 하는 시행 시기가 다르면 나라의 경영이 뒤틀린다는 내용이 담겼다 했다.

 그는 ‘율곡 책문 연구’(가제)를 집필 중이라 했다. 책문이란 과거시험의 답안지지만 율곡은 그 준비과정에서 17편의 책문을 썼으며 이를 통해 현실에 바탕한 율곡의 정치사상을 엿볼 수 있다고 귀띔했다. 성학집요의 국역본은 몇 권 나왔는데 전집의 하나거나 절판되어 일반 독자들이 쉽게 볼 수 없는 형편이다. 연말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지도자를 자처하는 이들에겐 교훈을, 일반독자들에겐 제대로 된 선택을 위한 잣대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때맞춰 나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글=김성희 기자<jaejae@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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