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담장소 제네바는 북한 1차 핵위기 돌파 대미외교 승리의 상징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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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호 07면

스위스 제네바에서 개최된 2차 북·미 관계정상화 실무회담 사흘 전인 지난달 29일.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는 워싱턴에서 회담과 관련한 언론 브리핑을 했다. 여기서 한 기자가 질문했다. “제네바가 1994년 북·미 기본합의(Agreed Framework)를 이룬 장소여서 북·미 간 좋은 시절을 연상시킨다. 의미를 내포하고 있느냐”는 내용이었다. 힐은 “아니다. 제네바는 양측의 공관이 모두 있어 이런 종류의 회담에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수주 전만 해도 동남아 국가를 생각했지만 지도를 보니 시드니(7일 APEC 개최지)로 가기가 훨씬 수월해 북한이 원하는 제네바에 동의했다”고 말했다. 역사성과 상징성은 생각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북한이 생각하는 ‘제네바’는 남다르다. 94년 클린턴 행정부와 1년여 줄다리기 끝에 만든 제네바 합의를 북한은 5000년 민족사의 쾌거로 부른다. 영변의 핵시설을 동결하는 대신 북한은 경수로 2기와 경수로 완공 때까지 매년 중유 50만t을 공급받기로 한 합의다. 북·미 수교계획도 담겼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당시 제네바 합의 이행을 다짐한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의 서한을 ‘항복문서’로 부르고 강석주 등 핵 상무조(태스크포스팀)를 불러 축하 연회를 베풀었다고 한다(북한 다큐멘터리 소설 ‘역사의 대하’, 일본 ‘겐다이’지 김정일 발언록). 북한은 1차 핵위기 끝에 미국을 상대로 이룩한 외교성과를 이번에도 같은 제네바에서 재연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도 회담 개최지의 역사성·상징성에 무게를 두지 않는다는 제스처를 보이고 있지만, 지난 1월 베를린 회담 때부터 북한이 선호하는 회담 장소를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 미국의 대북 협상 의지, 신뢰구축 노력을 보여준다는 평가다.

베를린도 북한이 1990년대 이후 고비 때마다 미국과 협상에 나섰던 의미있는 장소다. 제네바 핵협상 타결 이후 95년 경수로 회담을, 96년 4월에는 1차 미사일 협상을 개최했다. 99년 9월 5차 미사일 협상에서 북한은 미사일 시험발사 유예에, 미국은 대북 경제제재 완화에 합의했다. 99년 11월과 2000년 1월 이곳에서 고위급 회동을 통해 양측은 2000년의 해빙모드에 시동을 걸었다. 베를린 시내에서 북한과 미국 대사관은 운터덴린덴 거리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 독일 통일 이전까지만 해도 베를린은 북한이 유럽으로 진출하는 관문 역할을 했던 곳. 따라서 북한엔 더 없이 편한 회담 장소다.

이 밖에 북한이 선호하는 회담 장소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중국의 베이징 등이 있다. 회담 진행 시 평양과 훈령을 원활하게 주고받을 수 있을 정도로 공관 규모가 크고, 북한에 대해 우호적인 나라들이다. 거리나 시차도 고려된다. 쿠알라룸푸르의 경우 95년 제네바 합의에 기초한 경수로 지원협상, 2000년 북·미 미군 유해발굴 협상과 미사일 협상 등 굵직한 회담들이 열렸다. 북한에는 준홈구장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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