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귄터 그라스著 무당개구리 울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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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양철북』이란 소설로 1959년 전후 서독 문단에 신선한 충격파를 일으키며 등단했던 귄터 그라스는 故 하인리히 뵐과 더불어 서독 양심세력의 양대 지주였으며,오늘날 독일이 세계에 내놓을수 있는 국제적 명망을 갖춘 유일한 생존작가이기 도 하다.그러나 그의 작품세계는 시종여일 그의 고향인 동프러시아의 단치히(폴란드 이름 그다니스크)라는 지방도시를 무대로 하고 있으며,작품의 주제 또한 거기서 살았던 독일인들과 폴란드인들의 갈등이라는「지방적」테마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독일이 통일되고 유럽이 탈냉전시대의 변신을 겪고 있는 90년대에도 역시 그라스는 또 한편의「단치히 작품」을 내놓았는데『무당개구리 울음』이 그것이다.이 작품 역시 단치히 市 광장의 한좌판 꽃가게 앞에서 한 독일인 홀아비 교수와 폴 란드인 과수댁이 우연히 만나는 장면으로 시작되고 있다.이 두 남녀가 이렇게「운명적」해후를 한 것은 동유럽에서 변혁이 일어나던 시점으로 온갖 기발한 아이디어들이 백출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이들 두 남녀가 독일.폴란드 양 민족 화해의 차원에서 생각해낸 아이디어는 한때 단치히로부터 망명했거나 추방당했던 생존 독일인들에게 그들의 고향인 단치히에 묻힐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해주자는 것이었다.쉽게 의기투합한 두 남녀는 독일 .폴란드 공동의「묘지알선회사」를 설립하기로 했다.그러나 이 회사는 금방 여러 임원들의 정치적.시장경제적 이해관계가 서로 복잡하게 얽히는 미심쩍은 복합체로 변질돼 간다.『더러운 꼴 보기 전에 일찌감치 그만둬요!』라고 무당개구리는 그들 에게 경고한다.재기 넘치는 유머와 쓰디쓴 반어,그리고 날카로운 풍자가 뒤섞여 있는 그라스의 이 작품은 과거의 죄책에 대한 독일인들의 건망증을 깨우쳐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는 통일 독일이나 유럽의 통합이란 것이 진정 뜻있는 성 취가 되기 위해서는 유럽인들이 그들의 몸에 배어있는 제국주의적 사고와 자본주의적 체질을 탈피해자연(무당개구리의 울음)에 친화할 수 있는 자기혁신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베를린 유학생 홍윤기씨가 번역한 이 책은 장차 통일을 내다보고 있는 우리 한국의 독자들에게도 많은 시사점과 성찰의 계기를줄 것으로 생각한다.
安三煥〈서울대교수.독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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