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mily어린이책] 친구에게 기 죽어 울며 돌아온 아이 아빠의 선택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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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놀이터의 왕

필리스 레이놀즈 네일러 글, 놀라 랭그너 멀론 그림, 이옥용 옮김
보물창고, 32쪽, 8800원, 유아에서 초등 저학년까지

 아이를 어린이 놀이터에 보냈는데 울고 들어왔다. 동네 형 또는 힘센 아이가 그네를, 혹은 정글 짐을 독점하고는 놀지 못하게 하더란다. 이런 일이 벌어지면 욱하는 심정이 들게 마련이다. ‘그 집 애들은 교육을 어떻게 받았기에…’하는 생각도 들고 애들 등쌀을 못 이겨 못난 꼴을 보이는 아이에게 은근히 짜증이 나기도 한다. 여기다 혹 떼밀려 넘어져 무릎이 까지거나 얼굴을 긁히기라도 했다면 눈에 보이는 것이 없어지기 십상이다. 자칫하면 아이 싸움이 어른 싸움으로 번질 수도 있다. 어떻게 대처해야 슬기로울까.

 케빈은 놀이터에 갔다가 번번이 ‘놀이터의 왕’ 새미에게 쫓겨 돌아온다. 심술궂은 새미는 케빈을 쫓아내려 매일 겁을 준다. 케빈이 미끄럼을 타려 하면 밧줄로 꽁꽁 묶어 버리겠다고, 다음날 그네를 타려 하면 구덩이에 묻어 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그 다음날엔 정글짐에서 놀려는 케빈에게 문이랑 창문에 못질을 해 집에 가둬 버리겠다고 협박해 정글짐을 독점한다.

 그렇게 매번 집으로 쫓겨 온 케빈을 맞아주는 사람은 아빠다(실업자인지 매번 마당일을 하거나 요리를 하거나 차를 닦고 있다). 아빠는 얼굴을 붉히지 않는다. 놀이터로 쫓아나가 새미를 혼내지도 않는다. 대신 케빈에게 묻는다. “새미가 널 묶으려 하면 넌 뭘 할 거니?” “구덩이를 파는 동안 어떻게 할 거니?” “문에 못질하면 어쩌니?”하고.

 케빈은 아빠의 질문에 답하면서 스스로 답을 찾아간다. 고양이에게 스웨터를 입히려던 일을 떠올리며 “막 발길질을 할 거예요”라거나 뒤뜰에 말뚝 구덩이를 파는 데 오래 걸렸던 일을 기억해 “파낸 흙을 구덩이에 도로 차 넣을 거예요”라는 식으로. 이렇게 아빠의 도움으로 매일 스스로 답을 찾던 케빈은 드디어 모래 놀이통을 독차지하려는 새미에게 혼자, 그 자리에서 맞선다.

 책의 이야기는 행복한 결말을 맞지만 현실은 동화가 아니다. 위협만 하는 게 아니라 주먹다짐을 하려거나 막무가내인 아이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은 못된 친구에게 시달리는 아이를 어떻게 대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생각하게 만든다.

 아이를 끌고 씩씩거리며 놀이터로 달려가는 것은 일만 키우는 방법이다. 어른 싸움이 될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아이의 자립심이나 지혜를 키워주지 못한다. “넌 왜 바보같이 그러니? 대들지도 못하고…” 라며 윽박지르는 것 또한 부작용이 크다. 아이가 의기소침해지거나 앞으로 부모와 대화를 하지 않으려 할지 모른다.

 아이가 풀이 죽었을 때 아이 말을 들어주고, 스스로 객관적으로 생각해 해결책을 구할 수 있도록 대화를 이끄는 것이 길게 보면 더 나은 해법임을 이 책은 보여준다. 케빈은 자기가 약하거나 쓸모 없다고 여기지도 않고, 새미를 감싸안을 만큼 용감하고 너그러운 아이가 됐으니 말이다. 애들 싸움은 멋진 부모가 될, 좋은 기회일 수도 있다.

김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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