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만한 북­미 핵협상(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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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북한과 미국은 일단 영변의 7개 핵시설에 한차례 사찰을 실시하는 선에서 합의한 것으로 미 정부 고위당국자가 확인함으로써 지루한 핵씨름은 일단 한단계를 넘어섰다. 그러나 이 협상결과는 파국을 피하기 위한 마지못한 선택이 될지는 모르지만 만족할만한 성과는 못된다.
북한이 지난해 3월 핵 비확산조약(NPT) 탈퇴를 선언하기 이전보다 더 좋아지기 보다는 오히려 더 나쁜 조건으로 제한된 사찰만 한다는 것이 이번 합의내용이다. 북한측 주장대로라면 아직도 NPT에서 탈퇴를 유보했을뿐 완전한 회원국이 아니니까 한차례 사찰을 허용하는 것도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 아니라 협조라는 것이다.
이는 영변의 미신고 핵시설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요구가 있기 이전에 할 수 있었던 통상적인 사찰조건에도 못미치는 상황이다. 이렇게 북한은 국제기준에 미흡한 행동을 하면서도 많은 이득을 챙기고 있다. 팀스피리트훈련의 유보라는 그들의 요구관철에서부터 지난 3월이래 미국과의 직접 접촉통로를 확보하게 된 것이다. 북한이 이같은 성과를 거둔 반면,우리쪽의 요구가 이루어진 것이라곤 하나도 없다.
당초 완전한 핵사찰 수용을 요구했던 미국은 어떤 형태로든 북한을 NPT체제에 묶어 완전한 핵사찰을 받게 하기 위한 고육책으로 전술적인 양보를 한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협상을 결렬시키기 보다는 일단 대화의 통로를 유지해 다음 고위급회담에서 순차적으로 해결해 나가자는 생각이다.
따라서 당장 남은 문제는 북한과 IAEA가 만나 사찰의 방법과 시기에 관한 협상이 어떻게 진행되느냐는 점이다. IAEA가 다만 북한 핵사찰의 연속성과 안전성을 점검하는 수준에 그치는,나쁜 선례가 될 단 한차례 사찰방안에 동의할지의 여부도 불확실한 형편이다.
이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북한이 미국과 3차 고위급회담을 가지면서 기대한 만큼 성실한 자세를 보여줄까 하는 의문이다. 지금까지 그들의 대화수법으로 미루어 협상진행 과정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조건과 제안들로 파상공세를 벌이며 회담을 지지부진하게 이끌고 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으로서는 고위급회담에서 미신고시설에 대한 사찰합의를 이끌어낸다는 전략이지만 상당히 많은 고비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 지금까지 미국과의 협상 성과에 재미를 붙인 나머지 남북대화는 건성으로 시늉만 하지 말란 법도 없다. 그러한 조짐은 이미 여러차례 나타난바 있다. 우리로서는 이에 대비해 북한의 핵투명성 보장과 남북대화 확보라는 부동의 원칙을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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