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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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제1부 불타는 바다 탈출(11)김가의 말에 반푼이가 거들었다. 『당연하지.시끄럽자고 떠드는데.그러는 선상님은 여기에 뭐 도 닦으러 오셨소? 칠성기도 드리러 오셨소? 인간만사 백일홍이오.』 『뭐? 인간만사 백일홍? 내 듣다 듣다 별소리를 다 듣네.왜? 인간만사 도라지,인간만사 채송화.뭐 그런 건 없나?』김가의 말에 반푼이도 지지 않는다.
『인간만사 뽕나무는 있더라.젠장할 것.내 어느 해 누에 농사를 쳐도 아주 크게 쳤는데,그해따라 뽕나무에 무슨 병이 끼었다나? 누에란 게 고치도 짓기 전에 누렇게 되더니 그냥 번데기가돼 버리는 게 아니겠어.히야,사람 복장 터지는 건… 내 그때 알었지.인간만사 뽕나무로구나 허고 말이다.』 속옷을 꿰매던 실을 이로 물어 끊으며 조씨가 또 중얼중얼 말했다.
『공자님도 이래저래 심사가 복잡허시겠구나.조선에서 이렇게 걸출한 말씀들이 터진 팟자루처럼 줄줄이 쏟아져 나오니.공자님이,나 이제 공자 안 할란다 할까 무섭다.』 더러는 콩을 반으로 쪼갠 콩쪽을 가지고 윷을 놀기도 했다.그런데 오늘은 누가 만들었는지,주사위를 만들어서 그것으로 윷판을 벌이고 있었다.
한쪽 구석에서 주사위를 굴려가면서 윷놀이를 하던 패거리들이 그것마저 시들해졌는지 이야기가 투전하던 때로 넘어가고 있었다.
『에라 이 옴붙을 놈.』 『욕이라하면 나도 입없어서 못할 내가 아니다.』 『좆빠진 강아지 모래밭 싸대듯 하네.』 『이 인사가 좀 뜨거운 맛을 봐야 알겠나….』 『어허,무슨 말을 그렇게 하나.나이를 봐도 자네하고야 어딘데.아무렴,아래턱이 위턱에올라가 붙을까.』 『참아야지.아암.내 이 섬구석에 와서 많이 사람되는구먼.』 큰 덩치를 웅크리며 장가가 외면을 했다.앞에 앉았던 얼굴 갸름한 이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힘 좋다고 소가 왕노릇 하나.』 이씨 말에 코방귀를 뀌면서 옆에서 한마디 한다.
『노루잠에 개꿈이지.별 실없는 소리는….』 이씨가 입맛을 다셨다. 『옥불탁(玉不琢)이면 불성기(不成器)란다.내 이놈의 지옥섬에 와서 될성 부른 떡잎부터 다 썩이는구나.다 썩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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