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지않는 회사 “우리 자랑”/신정연휴 구미공단을 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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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국가경쟁력 강화 앞장 다짐/반도체용 실리콘·코팅유리 양산 구슬땀
국제화·개방화 시대의 여명이 밝았다. 우리 산업의 생산현장은 나라밖 기업들과 본격적인 경쟁을 앞두고 새로운 각오를 다지고 있다. 새해 연휴기간중 경쟁력 강화를 위한 고동소리가 넘치는 구미공단을 찾아보았다. 생산성 향상과 기술개발에 땀을 흘리고 있는 근로자들의 모습을 취재하면서 우루과이라운드(UR) 시대를 능히 대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편집자주>
지난 1일 오전 11시 경북 구미시에 위치한 구미공업단지 제2공단내 (주)실트론에선 60여명의 직원들이 출근,생산라인마다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지난해말 노사 협의에서 새해부터는 공장을 3백65일 연중무휴로 가동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날 당직근무를 맡은 권태욱 생산1과장(38)의 설명이다. 이 회사는 작년 한햇동안 국내 수요 30%에 해당하는 반도체용 실리콘 웨이퍼 6천5백만평방인치를 공급해 국산반도체 수출의 뒤를 든든히 받쳤다. 올해는 생산량을 7천7백만평방인치로 늘려 국내 총수요의 40%까지 공급한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우리 회사의 공급량이 줄어들면 그만큼 외국산 실리콘 웨이퍼의 사용이 많아질 수 밖에 없습니다.』
국내에서 생산하는 실리콘 웨이퍼의 절대량이 부족해 이 회사의 공급량을 제외한 나머지는 현재 대부분 일본 시네츠사 등으로부터 수입해야 하는 실정이다.
갓 결혼한 신혼인데도 불구하고 이날 출근해 그로잉 작업에 열심인 정용석씨(32)는 『내가 생산하는 실리콘 웨이퍼가 반도체의 국산화에 한몫하고 그것이 곧 국가경쟁력의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다부지게 말한다. 구미공단 3공단에 위치한 삼성코닝공장 굴뚝도 연기를 계속 뿜어내고 있었다.
1천3백명의 직원중 관리직을 제외한 8백여명이 정상출근,1천8백도의 용해로에서 쏟아지는 유리물로 브라운관용 유리 등을 생산하느라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컬러TV 브라운관용 유리생산에 있어 이미 세계적인 수준에 올라있는 이 회사는 신규사업인 정밀기계 및 컴퓨터에 쓰이는 ITO 정밀박판 코팅유리의 양산을 앞두고 새해 첫날부터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그동안 미국·유럽 등의 제품과 경쟁했지만 올해부터는 액정 유리생산의 최고수준인 일본제품과의 일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특질소재사업본부의 안인우 ITO 생산부장(48)은 마침 자신이 개띠라며 회사로서나 자신으로서나 올해가 큰 의미를 가진다고 말한다.
이 공장은 지난해 그룹을 뒤흔든 「질의 경영」속에 오히려 제품 불량률이 높아지는 기현상도 보였다. 앞으로는 세계 최고수준의 제품과 경쟁해야 한다는 각오속에 회사 자체적으로 검사단계의 품질기준을 대폭 높인데 따른 결과였다.
공장 보정과 공정 컴퓨터실에서 만난 최영락씨(32)는 『요즘 퇴근후 매일 대구에 있는 영어학원에 다닌다』며 『관리직·생산직 구분없이 국제화에 대비하기 위해 외국어는 필수』라고 강조한다.
『회사의 새해 경영 슬로건이 「품질·기술 1류화에의 도전」입니다. 따라서 올해는 무엇보다 노사간 잡음없이 일심동체가 되는게 중요하지요.』
현장 직원들의 사기를 북돋고 있는 회사 인사팀 장중규과장의 이야기다.
이날 오후 삼성코닝 구미공장을 나와 차를 타고 10분쯤 달리자 공단 입구에 위치한 또다른 공장에서도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하게 났다.
폴리에스터를 생산한다는 중소 섬유업체 원선산업은 섬유업종의 경기가 전반적으로 안좋다고 알려져 있지만 신정연휴부터 공장을 돌리고 있었다.
이 회사의 공장장 박종호상무(46)는 만나자마자 대뜸 『이제는 경쟁에서 중소기업과 대기업이 따로 없다』며 『3백10명의 직원중 1백명씩 3교대로 출근해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고 말한다.
생산 전량을 수출한다는 이 회사는 최근 홍콩과 중동에서 3월까지의 수출오더가 밀려있어 눈코 뜰새없이 바쁜 모습이었다.
『연휴에도 나와서 일하는데 불만이 없느냐』는 질문에 생산1과에서 옷감을 뽑던 장재옥씨(25·여)는 『회사가 바쁘게 돌아간다는 것이 오히려 친구들에 자랑거리』라며 웃는다.<구미공단=박승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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