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사재기(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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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63년에 별세한 공초 오상순시인은 우리나라 최고의 애연가였다. 그의 생전 모습을 담은 사진들을 보면 거의가 자연에 휩싸여 꿈꾸는 듯한 표정들이다. 그와 가까웠던 문인들은 그가 매일 최소한 1백개비 이상의 담배를 피웠다고 증언한다. 일평생 독신으로 지낸데다가 돈을 모르고 살았으므로 담배값을 마련하는 일만도 수월치 않았을 것이다. 50년대 후반부터는 전매청에서 그 소문을 듣고 매일 10개비들이 「사슴」 담배 10갑씩을 공급했다고 한다.
공초외에도 하루 1백개비를 피우는 애연가들은 적지 않다. 한개비를 태우는데 걸리는 시간을 10분 정도로 잡는다면 잠자는 시간 8시간을 빼놓고 하루종일 담배를 입에 물고 있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줄담배」라는 표현도 여기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공초는 말년에 이르러 전매청 덕분에 담배값 걱정을 않고 담배를 즐길 수 있었지만 담배를 하루에 다섯갑씩이나 피울 정도가 되면 어지간한 고소득층이 아니고서는 결코 무시하지 못할 액수다. 한갑 6백원짜리 담배라면 한달 9만원에 1년이면 1백8만원이고,8백원짜리라면 한달 12만원에 1년이면 1백44만원에 달한다. 중견 샐러리맨의 한달치 봉급에 해당한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들이야 담뱃값이 어떻게 되든 관심밖의 일이겠지만 애연가들에게는 담배값 인상이 당장 호주머니 사정과 직결되므로 남의 일일 수가 없다.
담배값이 곧 1백원 내지 2백원 가량 인상될 것이라는 보도가 있고 나서 일부 산매상들이 수백만원어치씩 사재기를 하는 통에 일부 지역에서는 담배공급이 평소의 절반으로 떨어지는 등 품귀현상까지 빚고 있다 한다. 종전 값에 사두었다가 오른 값에 팔면 앉아서 10% 내지 30%의 이득을 취하게 되니 상인들의 사재기야 당연하지만 이래저래 애연가들만 골탕 먹는 셈이다.
『그까짓 백해무익한 담배를 뭣 때문에 줄기차게 피워대느냐』고 나무라기는 쉽지만 막상 피우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끊는다는게 쉬운 일이 아니다. 건강 때문만이 아니라 예부터 흡연은 일종의 「죄악」으로 인식됐다. 담배에 관한 각 지방의 민요들은 저승에 가서 담배를 피운 죄를 용서받기 위해 만들어진 것들이 많다. 담뱃값 인상도 죄값을 치르는 것으로 생각해야 할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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