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을찾아서>사진리대설 출간 고형렬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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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고요와 외로움을 잃고 살아가고들 있습니다.외로움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곧 자기 자신을 잃는 것인데,저 자신도 그러고도 용하게 살아왔습니다.도시와 욕망,편리와 진보가 앗아가버린 고요와외로움의 집을 찾아가고 싶습니다.한조각 방심과 주저주저하는 언어들로서….』 시인 高炯烈씨(39)가 시집『사진리 대설』(창작과비평사刊)을 펴냈다.79년『現代文學』에 시「莊子」가 추천돼 문단에 나온 高씨는 시집『大靑峰 수박밭』『해청』『해가 떠올라 풀이슬을 두드리고』『서울은 안녕한가』등과 장시「리틀보이」등을 발표하며 순수시적 깊이는 물론 노동.민중.통일.환경시등 시대와환경에 대처하는 폭넓은 시적 활동을 펼쳐왔다.
『무엇이 울고온다 추전역을 넘는다/가까운 하늘 모두가 잠든 광산 너머/꿈들 죽어가는 산을 넘는다/코스모스도 산국도 바람도/보이지 않는 추전역을 누가/사방에서 울며 온다/물소리에 또로롱 또로롱/마음고생하며 가누나,거리 환한 바닥/저 아래 제천 원주 가는 길/지상에서 두 레일만 밤새워 빛난다/까닭을 알 수없이/이곳을 넘으면 가족이 보일 듯/아무도 타지 않는다,내리지않는다/태백을 지나 어둠으로 가는 길/아,이곳에 서럽고도 높은사랑이 있었다.』 시「추전역」 전반부다.추전역은 中央線의 태백과 고한 사이에 있다.남한에서 가장 높은데 있는 이 역을 넘으면 시인의 고향 속초에 이른다.「추전역」은 시인이 고향 가는 야간열차에서 읊은 시다.「사방에서 울며」오는듯한 목쉰 汽笛,전조등 이 뚫어놓은 어둠속의 빛나는 평행 레일,그 「어둠으로 가는 길」에 시인은 「서럽고도 높은 사랑이 있었다」고 한다.「꿈」과 「바람」까지 앗아가버린 어둠속으로 난 길에 사랑이 있다면서도 시인은 또 까닭을 알수 없다 한다.
상황을 더듬더듬 구체적으로 묘사해가면서도 까닭은 밝히지 않는다는게 이 시집에 드러난 高씨의 시적 전략이며 미학이다.현실과꿈을 동시에 사는 우리네 삶,高씨의 시들은 어정쩡한 언어들로 실존적 삶을 입체적으로 드러낸다.
『하아얀 눈이 마당을 여드레 내리고 나니/눈이 정말로 무서워졌다.아흐레 만에 날이 드니/눈물이 나는 오후였다.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는 선처럼/해도 우물우물 빨리 서산으로 지려 하고/마을은 오랜만에 빨간 불빛들을 서로 볼수 있었다.
/죽지않고 살아 있는 친구들의 말소리도 들려왔다./언제나 어둡고 높고 촌스럽기만 하던 설악산이/사진리 하고는 바닷가 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산이/그날 처음으로 야산이 되는 것을 보았다.』 유년시절 고향의 大雪 정경을 그리고 있는 표제시 앞부분이다.속초 외곽 조그만 마을에서 태어난 高씨는 하늘과 바다와 산만 바라보고 자랐다.高씨의 시들에는 그 광막한 대자연의 여백이 前景을 차지한다.그리고 그 여백에 인간과 인간세상이 들어간다.유년시절 말과 조사법을 배우는 듯한 어리숙한 어투로 인간과 자연의 화해를 꾀하고 있는 것이 『사진리 대설』이다.그리고 그 어리숙한 어투로 인식에 닳은 낡은 세계,다 그렇고 그런인간세계를 아연 원초적 세계.관계로 돌려놓으 며 도회에서도 삶의 신화와 넉넉한 꿈을 불어넣고 있는 것이 시집 『사진리 대설』에 실린 高씨의 좋은 시들이다.
〈李京哲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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