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미국의 북핵 대응(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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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미국이 북한에 대한 핵정책을 수정,새로운 협상안을 마련중이라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북한측의 팀스피리트훈련 중지요구를 먼저 수용하는 등 일괄타결 방식쪽으로 미국의 국가안전보장협회의(NSC)에서 의견을 모아 클린턴 대통령에게 건의,APEC 정상회담에 참석하는 김영삼대통령 등과 협의해 결정하게 될 것이라는 보도다.
그 내용은 지금까지 한미 두나라 정부가 팀스피리트훈련 중지의 전제로 내세웠던 북한 핵시설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이라는 조건을 거둬들인다는 것으로 돼있다. 불과 보름전 한국 국방장관이 북한의 태도를 보아 팀스피리트훈련 중지여부를 고려하겠다는 합의를 기억하는 우리로서는 당혹감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내년 2월까지 북한측이 핵사찰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고 남북대화를 하지 않으면 훈련을 즉시 실시한다는 조건을 달고 있기는 하지만 이 새로운 협상안은 기존의 대북 핵정책을 전면 수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미국측 입장에서는 이를 두고 조건의 선후를 조정한 전술적인 변화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로서는 팀스피리트훈련이 북한의 대남 도발가능성을 억지하는 체제였다는데서 북한측으로부터 아무런 보장없이 중지부터 결정하는 것은 너무 성급하고 유화적인 대응이 아니냐는 걱정을 지울 수 없다.
특히 항상 대북한 정책에 관한한 긴밀한 협조와 공조체제를 강조해온 한미 당국자들이 이러한 방안을 두고 충분한 협의를 했는지도 궁금하다. NSC의 정책건의 내용이 일부 보도된 뒤에도 우리 정부 당국자는 기존의 핵정책은 아무런 변화도 없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 거론되고 있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북한이 핵개발을 완전히 포기하게만 된다면 고려해볼 수도 있다. 그러나 우선 우려되는 것은 북한이 팀스피리트훈련 중지라는 과실을 획득한 다음 과연 핵투명성을 보장하겠느냐 하는 점이다. 지금까지 남북한의 협상에서 한가지 목표를 달성하고 나면 번번이 새로운 조건을 들고 나와 대화를 중단하곤 했던 북한의 행태를 미국정부는 고려해야 할 것이다.
또 우려되는 점은 북한의 전략이 착착 이뤄지고 있지 않나 하는 인상이다. 북한의 기본 대남전략은 한국을 제쳐놓고 미국과 직접 대화통로를 만들자는데 있다. 거기에다 한미관계에 틈새를 벌릴 수 있다면 북한에는 더 좋을게 없다. 물론 그런 단계까지는 가지 않겠지만 만약 이같은 정책 대전환이 두나라 사이에 충분한 협의없이 이뤄졌다면 심각한 문제다.
표면적으로 나타내지는 않았지만 그럴 경우 미국과 북한이 우리 모르게 직접 뒷거래를 할지도 모른다는 우리 국민의 걱정을 증폭시키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떠한 형식으로 대북정책을 마련하든 한미 정책당국자들은 이러한 점들을 명심해 긴밀한 협의를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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