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당 조용히 재기 몸짓/기나긴 침묵 깬 의원 12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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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당직·지구당 정비… 자금은 충분/강원·경북 발판으로 재약진 겨냥/잇단 정책세미나… 떨어진 당세 만회할지 미지수
지난해 총선당시 돌풍을 일으켰다가 정주영 전 대표의 쇠락과 함께 대중의 뇌리속에서 사라져갔던 국민당이 최근 조용히 재기의 몸짓을 하고 있다.
정 전 대표의 대선패배 및 그의 탈당으로 연쇄 탈당사태가 벌어졌던 국민당은 전성기에 38명이나 됐던 의원들이 현재는 12명으로 쪼그라들었다.
창당시부터 몸담았던 김동길 현 대표·조순환·조일현·문창모·강부자의원과 박철언·박구일·김복동·김용환·이자헌·유수호의원 등 민자 출신 입당파,민주당에서 온 한영수의원 등이 전부다.
14대 총선에서 31명을 당선시키며 기염을 토했던 때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의 초라한 형색인 셈이다.
○3역도 이미 선정
그런 국민당이 움직이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대선당시 정책정당의 이미지제고를 노려 19차례나 개최됐다가 당 와해와 함께 중단됐던 「광화문 토론회」를 부활시킨 대규모 정책세미나를 오는 18일 개최해 서서히 당이미지 강화에 나선다는게 국민당의 계산이다. 특히 이 세미나는 「경제활력을 위한 정부조직 개편방향」이라는 핫이슈를 주제로 내걸고 이문영 경기대 대학원장·정정길 서울대 교수·이필상 고려대 교수를 발제자로 참여시켜 국민당이 상대적 우위를 지녀왔다고 스스로 간주해왔던 「경제정당」 이미지 복원의 계기로 삼겠다는 것이다.
국민당은 이와함께 이달초 하위직 당직자 인선을 모두 마무리해 내부전열정비를 끝낸 상태다. 지난 2월 당와해이후 유명무실했던 70여개 지구당에 대한 현장실사를 통해 조직책 정비를 완료,현재 1백48개 지구당 위원장을 채워놓고 있다. 이미 박구일 사무총장·조일현 정책위 의장과 조순환 원내 대책위원(원내총무격) 등 당3역의 구색도 갖춰놓았다.
조 정책위 의장은 『국민당에는 현재 새로 들어올 의원도 없겠지만 이제 더이상 나갈 의원도 없다』며 이같은 재약진 시도의 배경을 요약했다.
○당내부결속 강화
한 의원은 『민자당은 동력선이 없으면 한치도 움직이지 않는 새우잡이배이며 민주당은 9인9색의 사공이 몰아 산으로 올라가는 배』라고 빗댄뒤 『향후 민정계의 향배 등 정계의 지각변동속에서 국민당을 꾸준히 지켜가면 회생할 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민자당 민정계의 향후 거취에 따라 국민당내 TK 의원들이 구심점 역할을 할 수도 있으리라는 속셈이다. 김동길대표가 민주당과의 야권공조에 관심을 보이고 있으나 여타 의원들은 『통합은 필요없다』며 시큰둥한 반응들이다.
국민당이 강세를 보였던 강원·경북지역에서도 단지 잊혀지고 있을뿐 다시 유권자 정서를 끌어낼 가능성이 있다는게 국민당측 분석이다. 국민당이 후보를 내지 않았던 대구 보궐선거에서 무소속 후보가 당선되고 여당의 아성인 강원 명주­양양에서도 야당 후보가 당선된 점이 그 근거라는 것이다.
당을 계속 지탱케하는 실질적 요인인 재정상태도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총선 당시의 득표율과 현 의석수에 의해 분기별로 5억여원의 국고보조금을 받고 있다. 지난 추석때는 지구당 위원장에게 50만원의 떡값까지 돌렸으며 향후를 대비해 저축까지 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성북동에 5억원을 주고 지상 5층의 당사도 임대해 쓰고 있다. 실속은 단단히 챙겨가고 있는 셈이다.
특히 박철언의원의 구속 등 외환으로 당내부는 오히려 끈끈해지고 있다는게 당관게자들의 분석이다. 김 대표가 의원들과 상의도 없이 춘천 보궐선거 공천을 포기해 이미 점지해놓은 후보를 철회하는 소동을 벌였을 때도 김 대표에게 큰 소리를 내는 의원들은 없었다. 『당을 더 이상 깨지말자』는 위기의식이 오히려 당을 평온하게 하고 있다.
○정 전 대표 접촉도
흥미로운 것은 일부 의원들이 요즘은 은밀히 정 전 대표를 만나고 있다는 점이다. 한 의원은 정 전 대표가 자신을 만나 당을 깨뜨린 것이 「순수한 자의」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는 양해성 발언을 했다고 전했다.
국민당은 내년 4월까지 정기 전당대회를 그들의 이미지 재구축의 전기로 삼으려하고 있다. 그러나 실추될대로 실추된 당세와 재산공개후 드러난 일부 소속의원들의 비도덕성을 만회하고 「개혁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최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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