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육로 가능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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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정 통일부 장관이 9일 정례 브리핑에서 평양에 갈 남북 정상회담 대표단의 방북 교통편을 언급했다. 그는 "육로로 대표단이 갈 수 있도록 (북측에) 요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장관은 그러나 육로가 철도인지, 고속도로인지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정부 당국자는 이날 "우리 정부는 경의선 열차를 통한 (노무현 대통령의) 방북이 남북 정상회담의 상징으로 부각될 수 있다고 생각해 강력하게 제안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북측은 과연 이런 방안을 수용할까. 남북은 2000년 6월 김대중 전 대통령이 평양으로 갈 때 '서해 직항로(항공편)'를 열었다. 남북을 오가는 교통편으로 항공기가 처음 이용됐다. 이후 서해 직항편은 남북 교류.화해를 상징하는 단어가 됐다.

노무현 정부도 일단 제1차 정상회담에 비해 차별화된 교통편으로 경의선 열차를 이용할 뜻을 밝히고 있다. 남북은 올 5월 17일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경의선 시험 운행을 한 바 있다. 노 대통령이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평양역에 내리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하다.

문제는 북한의 태도다. 지금까지 북한은 경의선 완전 개통에 부정적 입장을 지켜왔다. 특히 군부 강경파들이 "경의선을 개통할 경우 군사적으로 큰 타격을 받게 된다"며 반대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당국자는 "북측이 경호의 어려움을 들어 비행편을 원한다"고 말했다.

철도 시설의 낙후와 궁핍한 주민 생활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부담도 무시할 수 없다. 개성~평양역까지의 레일.침목.신호시스템 등의 시설이 노후돼 시속 60㎞ 이상으로 열차가 달릴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하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남북 관계 진전의 상징성을 위해 '통 큰 결단'을 할 경우 노 대통령의 열차 방북이 성사될 수 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정부 소식통은 "북한 체제의 특성상 김 위원장의 결단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이재정 장관은 "다음주 개성 실무접촉에서 논의될 것"이라고 했다. 우리 정부는 북측이 열차 방북을 끝까지 반대하는 상황에 대비해 개성~평양 고속도로(2시간30분가량 소요)를 이용하는 방북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3년 10월 평양 보통강 구역에 세워진 유경 정주영체육관 준공식 때 남한 대표단 1000명이 고속도로를 통해 서울과 평양을 오갔다. 올 4월 방북한 빌 리처드슨 미국 뉴멕시코주 주지사 일행 역시 육로를 이용해 판문점으로 귀환했다.

정부 당국자는 "현 시점에선 고속도로를 통한 방북이 열차 편에 비해 상대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크다"고 관측했다. 그러나 북한이 육로 방북 자체를 거부할 경우 서해 직항로를 택할 수밖에 없다.

이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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